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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제복의 부활과 이성의 실종

등록 2013-12-04 19:22수정 2013-12-05 09:50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연합뉴스>는 엊그제 이런 기사를 타전했다. “… 디엔반현 하미마을의 학살 피해자 위령비. … 1968년 2월25일, 한국 해병대원들은 하미마을에 살던 민간인 135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 위령비 앞면에는 당시 숨진 135명의 명단과 출생연도가 새겨져 있다. 이들 가운데 최연소자 3명은 당시 갓 태어난 상태로 짐작되는 1968년생이다.” 위령비는 2000년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화해의 뜻으로 3만달러를 지원해, 마을에서 건립한 것이었다.

서울 종로구 홍지동 세검정3거리 상명대학교 올라가는 인도 한가운데에는 고엽제전우회 회원 둘이 제복 차림으로 오늘도 이런 내용의 입간판을 지키고 있다. “자라나는 후세들을 진보좌파 종북세력으로 양성하려고 혈안이 된…, 베트남전 고엽제 환자 명예훼손과 북한 만행은 한 줄도 서술하지 않는 중고교 좌편향 교사서 집필한 주진오(상명대) … 등을 대한민국 교육계에서 영원히 퇴출하자.”

전우회 200여명이 학교 안으로 진입해, 확성기를 틀어놓고 시위를 했던 건 9월24일이었고, 그때부터 이어져 왔으니 엊그제로 100일째다. 주 교수가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양민학살이 있었다”고 발언한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 학계에서 인정돼 교과서에 담긴 지는 이미 오래였다. 우리 군도 민간인 희생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전투중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할 수 없어 일어난 경우라고 주장할 뿐이다. 하지만 베트남에는 최소 30개 이상의 이른바 ‘한국군 증오비’가 있다. 빈호아마을 위령비엔 이런 비문이 새겨져 있다.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이 학살에서 희생된 자의 수가 총 430명이며, 그중 268명은 여성, 109명은 50세에서 80세까지 노인, 82명은 어린이, 7명은 임신부였다….”

학살 책임자로 낙인찍히는 걸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영광스런 전쟁이길 원하지만, 지금은 무엇으로도 참전을 합리화할 수 없는 게 베트남 전쟁이었다. 그 광기의 전장으로 내몰려 명령에 따라 사살하고, 불태우고, 파괴했다지만, 학살의 책임을 사병들에게 돌릴 순 없다. 정작 책임져야 할 자들은, 처음엔 국가 안보와 동맹이란 이름 뒤에 숨었고, 패전 뒤엔 산업화의 토대라는 명분 뒤에 숨었다. 게다가 그들은 고엽제 피해를 인정하지 않았고 피해자에 대한 치료와 생활지원을 거부했다. 그나마 보상이 제도화된 것은 <한겨레> 등 민주시민들의 인도적 노력에 따라 민주적 정부가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책임자들이 지금 피해자의 분노를 앞세워 민주적 매체와 시민, 그리고 정부를 종북으로 매도한다. ‘제복의 마술’을 이용해서 말이다.

순진했다던 미군 여성이 군복을 입고는 무죄한 이라크인을 성적으로 능멸하고 고문을 가했던 일을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다. 하다못해 예비군복만 입어도 멋대로 방뇨하고, 여성들을 마구 희롱하며, 말끝마다 욕설을 달고, 성적 농담이 빠지면 대화가 안 된다. 그런 제복의 마비 효과를 요긴하게 이용한 것이 바로 일본 군국주의 후예다. 그들은 지금도 으레 침략전쟁 때의 군복을 입고 군국주의의 부활을 도모한다. 조선 침략과 병탄과 수탈과 학살을 부정하고,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간토(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부정할 때도 그 제복을 챙겨 입는다. 제복의 목 단추를 채우는 순간 이성은 마비되고 도덕 감정은 사라진다.

하필 그런 자들을 우리가 왜 따라야 할까. 그것이 일상화된 건 병역 미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야전잠바를 입고 지휘봉을 휘두를 때부터였다. 대통령, 국무총리, 감사원장 등이 군대 근처도 가보지 않은 이 정부 들어서는 종북몰이의 선봉에 언제나 이들이 있었다. 학자는 물론 종교인, 시민 등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도 방치했다.

그 폐해를 절감했던 건 군사정권이었으니 아이러니다. 오죽했으면, 유신정권은 군복 및 군용 장구 단속법을 제정해 함부로 군복을 착용하는 걸 금지했다. 전두환 정권은 서민들이 작업복으로 자주 입던 예비군복 착용까지도 규제했다. 역사는 희극도 비극도 아닌 암흑기로 끌려가는가.

곽병찬 논설위원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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