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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박근혜씨와 그 양반들 / 이라영

등록 2013-12-04 19:24

이라영 집필노동자
이라영 집필노동자
성인이 된 이후 사람을 부르는 호칭 때문에 고민해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고민’이 되는 이유는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관계의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른 이를 부르는 방식이 참 다양하다. 게다가 이름은 너무 무거워서 함부로 부를 수조차 없다. 한국어의 복잡한 호칭과 지칭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계질서가 철저한 서열 사회인지, 그리고 온갖 차별이 어떻게 문화나 전통으로 포장되었는지 알 수 있다. 남편의 동생인 시동생은 ‘서방님’이나 ‘도련님’이지만 아내의 동생을 부를 때는 ‘님’이 필요 없다. 세대, 성, 계층 간의 강고한 위계가 종종 예의로 포장된다. 예의라는 개념이 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집중되어 있기에 늘 위아래를 질서 있게 정리해야 관계가 평화로워진다. 그 ‘질서’ 속에서 숨이 막힌다. 한국 사회의 인간관계는 이렇게 가파른 수직을 형성하고 있다.

주말에 동료들과 식사를 하는데 한 ‘박사님’이 “한국에서는 자꾸 나보고 ‘○ 박사님’이라고 불러서 너무 불편해요”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직책과 직업으로 그 사람을 부르는 일이 흔하다. 물론 모든 직업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좋은’ 직업군에 속할수록 열심히 불려진다. 부모님이 사는 집 가까이에 ‘전 대학총장’이 이사를 왔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총장님’이라 부른다. 반면 앞집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 올 때 “반야야~”라고 (엄마를) 부르며 들어온다. ‘반야’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다.

“이 양반들이 지금 비정규직이 아니에요”라는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의 변명을 들었다. 그가 말한 ‘이 양반들’이란 국회 청소노동자들을 일컫는다. 청소노동자들이 무기계약직이 되면 파업할까 봐 걱정하는 그는 그 ‘양반들’이 용역업체의 정규직이라고 우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개념이 뒤죽박죽인 그의 머릿속도 신기하지만 나는 또 ‘사소한’ 것이 거슬린다. 얼마 전에 야당의 한 정치인이 대통령을 ‘박근혜씨’라고 지칭한 후 새누리당이 냈던 논평이 생각났다. ‘씨’라는 지칭을 두고 막말이라 했고,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라며 분노했고, 석고대죄를 요구했으며, 공당의 대표에게 필요한 격이 없다는 혹독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렇게 ‘격’을 따지는 분들인 줄 몰랐다. 왕조시대 언어인 ‘석고대죄’가 국민이 주권을 가진 민주주의 시대에 등장했다. 3인칭에서 ‘씨’가 막말이면 ‘이 양반들’은 격이 있는 표현인가. 대통령은 이름 뒤에 ‘씨’라고 불러도 모독이 될 정도로 지엄하신 분이고 청소노동자들은 방송에서 ‘이 양반들’이라 불러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만만한 계층이라는 질서정연한 사고가 드러난다.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은 청소노동자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다.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 다른 일을 할 뿐이다.

‘박근혜씨’에 분개하는 집권당의 모습과 청소노동자들을 ‘이 양반들’이라 서슴없이 부르는 국회의원의 태도는 ‘권력에 대한 예우’만 따지고 ‘인간에 대한 예의’는 무시하는 이 사회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침묵시위 중인 청소노동자 앞에서 거만하게 허리를 꼿꼿이 펴고 내려다보는 사진 속의 국회의원 ‘양반’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는가.

흔히 사용하는 ‘사회지도층’이라는 말을 듣고 볼 때마다 늘 의문이다. 지도층은 누구일까. 돈과 권력을 가지면 지도층인가. 부유층과 권력층이 은근슬쩍 지도층으로 불리며 깍듯한 예우를 받을 때 다수의 노동자 서민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위협받는다. 무기계약직 되면 노동 3권 보장된다고 김태흠 의원이 염려하던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라영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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