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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그 많던 진보는 어디로 / 한귀영

등록 2013-12-10 19:07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그토록 뜨겁고 팽팽했던 18대 대선이 치러진 지 어느덧 일년이 지났다.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3.6%에 불과했지만 대선 결과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대선 직전까지만 해도 정권교체 여론이 60%를 웃돌았고 변화에 대한 열망은 매우 강렬했다. 하지만 지금은 보수의 영구집권 우려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대선 직전에는 정책만 놓고 보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보수진영이 과감한 중도 행보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 곳곳에서 극우 보수화 바람이 거세다. 대선 결과에 실망해 집단적 멘붕 증세까지 보이던 48%의 야권 지지자는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변화를 열망하던 그 많던 진보개혁 유권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돌이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은 철저히 중도적·포용적 노선을 취했기에 가능했다. 김종인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이준석을 통해 젊은층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끌어안는 듯했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직후 선택한 첫 공식 행보도 봉하마을과 전태일재단 방문이었다. 아무리 선거를 의식했다 하더라도 이는 보수의 성장과 진화, 그리고 자기부정을 통한 혁신에 가까웠다. 그 과감성은 ‘진보’라는 레토릭에 안주하면서 혁신에 게을렀던 진보개혁진영과 확연히 대비되었다. 18대 대선에서 안정적 변화를 바라던 중도층과 50대가 대거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데에는 이렇게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을 찍지 않았던 48%의 유권자들도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그래도 웬만큼은 하겠지’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보수세력이건 진보세력이건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 정부로부터 중도나 포용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우경화를 넘어 극우주의가 판을 치고, 비판과 반대는 ‘종북’이라는 낙인 속에 설 자리를 잃었다. 김종인·이상돈·이준석 등 박근혜의 중도 포용 노선을 상징하던 인물들이 속속 떠나고 있는 것은 그 단적인 사례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를 웃도는 등 여전히 높다. 노무현·이명박 등 전임 대통령과 비교하다 보니 특히 그렇게 느껴진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지난 일년 동안 극우 보수화 흐름 속에서 진보적 대중들도 버티지 못하고 변심하고 만 것일까?

48%의 진보개혁적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지난 일년의 상황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기대고 싶어도 마땅한 대상이 없어 정치적 의사 표출이 막혀버린 것에 가깝다. 진보적 대중이 변한 게 아니라 이들을 묶을 리더십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젊은층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한 몸에 받았던 안철수는 더는 열정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희망 없는 현실 정치 속에서 새 정치가 무엇인지 알맹이를 보여주지 못한 채 여전히 ‘준비’ 중일 뿐이다. 문재인 역시 정치력과 자질 모두에서 의구심을 받고 있다. 진보개혁 대중을 이끌 큰 그릇의 지도자라기보다는 친노정치인이라는 작은 그릇으로 전락한 듯하다.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가까운 한국 정치의 균형추 역할로 기대를 모았던 진보정당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정치가 부재한 공간, 리더십이 실종된 공간을 대신해 총대를 메고 나선 이들이 천주교 사제 등 종교 지도자들이다.

도덕과 영성을 갖춘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은 상처받은 진보적 대중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일 뿐 리더십의 부재라는 세속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진보적 대중이 어디로 갈지 좌표를 세우고 이들을 묶을 리더십을 세우는 것, 이 문제의 해결 없이 대중의 응답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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