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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안녕치 못합니다 / 김우재

등록 2013-12-16 19:11수정 2013-12-24 09:51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올해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배제의 경제, 돈의 맹목성, 금융체제의 지배, 폭력을 부르는 불평등”을 현대사회의 도전과제로 꼽고, 불평등한 금융자본주의 체제는 사람을 해치는 제도라 권고했다. 십계명 중 “살인하지 말라”의 현대적 판본은 왜곡된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나아가 그는 “교회가 손에 흙을 묻히는 것을 주저해선 안 된다”는 말로 종교의 현실 참여를 강조했다. 한국 신부였다면 종북이 되었을 발언이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피터 힉스는 인터뷰를 통해 “요즘처럼 경쟁적인 연구 평가를 강조하는 대학 체계였다면 나는 전혀 생산적인 과학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힉스의 인터뷰가 잊히기도 전에,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랜디 셰크먼은 “네이처, 셀, 사이언스 등의 최고급 저널들의 전제정치를 깨뜨려야 한다”는 말과 함께 논문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는 최고급 저널들에 의해 주도되는 현재의 과학계를 금융계의 왜곡된 인센티브 혹은 명품 핸드백에 비유하고, 임팩트팩터와 같은 부정확한 업적 측정장치가 과학을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과학자였다면 동료들에게 ‘연구나 하라’고 밟혔을 발언이다.

과학자 존 지만은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을 둘러싼 제도들이 급격히 변화했다고 말한다. 더 이상 과학은 다윈과 아인슈타인의 과학이 아니다. 과학 자체가 거대해졌고, 기술과 연계된 과학만이 선별적으로 지원되었다. 과학자들은 효용성만을 고려한 연구로 관심사를 좁힐 수밖에 없었다. 그 밑바탕엔 효용만을 강조하는 금융자본주의가 놓여 있다. 곧, 과학이 변질된 기저에는 과학을 둘러싼 제도들, 그 제도들을 변질시킨 정치·경제적 체제가 녹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회의 과학은 그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며, 과학의 건강성은 그 사회의 건강성과 비례한다. 교황과 노벨상 수상자들의 발언은 묘하게 닮았고,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이 과학만을 피해갈 수는 없다.

반세기 전 영국의 과학자 존 데즈먼드 버널은 과학자들에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라 촉구했다. 그는 과학자가 직업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여겼다. 과학자의 연구실은 삶 그 자체로 확대될 수 있다. 그는 케임브리지 반전운동 그룹을 조직했고, 과학노동자연맹을 발족시켰고, 유네스코 창립을 도왔고, 과학자헌장의 초안을 작성했다. 그가 작성한 과학자헌장엔 과학자의 사회적 실천방안들이 적혀 있다.

과학자는 자신의 분야가 당면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문제들을 연구하고, 그 지식이 광범위하게 이해되고 실행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아 및 질병과 싸우고 모든 나라의 생활과 노동조건을 평등하게 개선하기 위해 과학을 사용할 새로운 방법을 탐구해야 한다. 공공행정의 모든 측면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과학의 국제적 성격을 유지하고, 전쟁의 근원을 연구하고,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위해 안정된 기반 구축을 추구하는 세력을 지원하고, 과학이 대량 파괴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에 반대하며, 인종차별, 권력찬미 등과 같은 반과학적 사상에 의해 고취된 운동에 저항하는 모든 것이 과학자의 책임이다. 마지막으로 버널은 과학자가 최선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조건은, 그들이 정당한 존경을 노력하여 획득한 사회에서만 충분히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고려대 주현우씨의 대자보가 화제다. 그 외침에 대한 반향들이 울려 퍼지고 있다. 아직 과학자로부터 대답은 듣지 못했을 듯싶다. 한국의 과학자들도 안녕치 못하다. 그래서 묻고 싶다. “한국의 과학자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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