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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 엄마가 구해줄게 / 이라영

등록 2014-01-01 19:23

이라영 집필노동자
이라영 집필노동자
“7남매 엄마”, “51세 두 아이 엄마”, “두 자녀를 둔 어머니.”

이 ‘엄마’들의 공통점은? 여성 지도자다. ‘7남매 엄마’는 독일의 첫 여성 국방장관이며 ‘51세 두 아이 엄마’는 자동차산업 역사상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제너럴 모터스)라고 한다. 그리고 ‘두 자녀를 둔 어머니’는 국내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다.

여성 지도자가 탄생하면 이렇게 그들의 자녀 수를 알게 된다. 여성에게 엄마의 정체성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남성 지도자를 “51세 두 아이 아빠”라고 소개하는 기사를 본 기억은 없다. 독일의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에게는 꾸준히 ‘엄마 리더십’을 실현한다고 ‘칭찬’한다. ‘엄마’는 막중한 ‘직업’이다. 희생과 헌신이라는 찬양으로 엄마의 ‘노동’은 애써 모른 척한 채 명예를 안긴다. 과도한 어머니 숭배 속에서 여성으로 규정된 존재는 출산과 육아를 통해 어머니의 ‘신분’을 얻어야 안전하다. 여성은 모성이 본능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회의 신화에 부응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실제 어머니든 아니든, 혹은 어머니의 마음에 대한 성찰이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여성들은 종종 ‘어머니의 마음’을 연출하길 요구받는다.

그래서 여성 지도자들은 자신이 어머니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어 남성과의 차이를 강조하려 노력한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8000명 가까운 노동자를 직위해제하며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심정”이라는 명언을 남긴 사건은 바로 그 안타까운 ‘노력’의 결과다. 혹자는 이를 두고 “어머니란 단어가 오물을 뒤집어썼다”고 했지만 이 역시 어머니의 성스러움이 전제된 사고다. 최 사장의 발언이 가진 문제는 어머니를 모욕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가진 사회의 견고한 신화를 아주 잘 이용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팔면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고 숭고해진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었다. 모성 신화가 가득한 사회에서 길러진 여성 지도자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대선 당시 후보 토론에 나와 “열 자식 안 굶기는 그 어머니 마음으로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했다. 여성에게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에 충실한 연기를 하는 것이다. 모성애가 여성의 특별한 미덕으로 여겨지기에 대통령을 국민의 어머니로 비유하는 황당한 수사가 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사이로 비유될 수 없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하지 않지만 국민은 대통령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이 ‘어머니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열심히 팔아 아버지로 상징되는 ‘법과 원칙’을 부르짖고 ‘국가’를 지키는 모습을 전시한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통념에 갇힌 그들(뿐 아니라 사회 전반)은 ‘약한 여자’로 보일까봐 ‘강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한층 활용한다. 자신이 아버지 못지않게 강력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은 기존의 아버지(남성 지도자)보다 훨씬 더 강경해야 한다. 철도노조 지도부를 찾기 위해 경찰이 조계사를 둘러싼 성탄 전날 ‘어머니’ 박근혜는 군의 최전방을 방문하여 군복을 입고 안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 등장하는 ‘엄마’는 문제적이며 독보적이었다. ‘내 새끼’만 보호하려는 엄마는 다른 생명에게는 얼마든지 무자비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박 대통령이나 최 사장이 활용하는 그 ‘어머니’는 그들 입장에서는 아주 정확한 수사다. (내 새끼를 위해 남의 새끼에게)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들은 바로 그 엄마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어머니들’은 오늘도 제 편을 향해 주술을 걸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

이라영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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