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 사회2부 기자
“김 기자, 카톡 닉네임 좀 바꿔. 그러다 일 나요…”, “너 아직 간이 큰가 보다? 그러다 붙들려가 임마~.”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이 불거진 직후 지인과 친구한테서 이런 전화를 받았다. 스마트폰 ‘카카오톡’ 별명이 ‘분당 좌파’이기 때문이다.
그땐 농담하듯 걱정하는 이 말을 그저 껄껄거리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불현듯 ‘진짜 봉변당하는 것 아냐?’라는 꺼림칙한 마음을 아직도 떨어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야릇한 공포는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대학 시절을 보낸 1980년대 서슬 퍼런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엔 민중이란 말은 엄두도 못 냈다. 오로지 국민이라고 불러야 했다. 노동자는 근로자로 고쳐 써야 했다. 투쟁이란 말을 쓰면 바로 ‘빨갱이’가 됐다.
혁명은 ‘산업혁명’이나 ‘프랑스 혁명’에만 붙여 쓸 수 있는 말이었다. 물론 4·19를 혁명이 아닌 의거라고 가르침을 당했다. 요즘 다시 유행하는 대자보를 붙이면 학교 수위아저씨가 똑똑 떼어냈다. 좀 ‘거친 분’에게 걸리면 멱살잡이도 당하기 일쑤였다.
‘아침이슬’이나 ‘농민가’를 흥얼거리기만 해도, 캠퍼스를 어슬렁거리던 사복경찰에게 끌려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자기 검열’이 필요했던 시대였다.
내가 나를 통제·검열하는 당시의 모든 억압은 ‘수구 보수’ 세력의 강요로 이뤄졌다. 이 세력은 수많은 이가 흘린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 성장으로 우리 주위를 잠시 떠났다. 하지만 음습하게 떠돌던 망령은 이제 다시 공포를 심고 있다.
보수는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유지하려 한다는 뜻이란다. 조성된 체제와 기반 속에서 올바른 것을 잘 지켜낸다는 자세다. 그러나 ‘수구’란 말이 붙으면 상황은 돌변한다. 옛 제도나 풍습을 그대로 지키고 따른 것이라지만, 뜯어보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지키기 위해 사상을 강요하고 통제한다. 바로 극우와 같다.
이 세력의 특징을 보자. 소수를 강압으로 대한다. 2009년 1월 보금자리를 지키려는 용산 철거민들을 경찰 특공대를 동원해 내쫓았다. 같은 해 여름 ‘해고는 살인’이라고 절규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테이저건(권총형 전기충격기)을 쏘며 강력 진압했다. 최근에는 “그저 살던 대로 살게 해달라”는 밀양 송전탑 반대 노인들을 지역이기주의자로 몰아붙이며 사지를 붙들어 내던졌다.
상식도 부정한다. “5·18 민주화 운동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떠들어댄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대선에 개입해 야당 후보자를 ‘종북정권, 세금도둑’이라고 비난하는 글을 퍼나르고도, ‘대북 심리전’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이런 국기문란 행위를 밝히자는 데도, ‘대선 불복’이라며 몰상식의 극치를 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사상만 강요하고 고집한다. 미래를 짊어진 학생들 교과서에 친일·독재를 미화한 거짓도 주입시키려 했다. 철권통치의 상징인 ‘유신시대가 좋았다’는 인사가 사회지도층인 양 행세를 한다. 일부 목사는 “하느님도 독재하셨다. 한국은 독재를 해야 된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폭력과 몰상식으로 똘똘 뭉친 수구 보수는 이제 그들만의 방송인 ‘종편’을 통해 “왜 우리 말에 토를 달고 의심만 하나? 국가를 수호하는 우리에게 질문 많고 의심 많으면 바로 종북좌빨”이라고 거침없이 공격한다. 수구 보수가 지나간 기억이 아니라 지금의 공포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굳이 지인들도 찝찝하게 생각하는 ‘분당 좌파’란 별명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그들과 다르고, 그들 말고도 다양한 양심이 존재함을 강조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몇번이나 자신을 검열했음을 고백한다.
김기성 사회2부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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