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칼럼니스트
20세기 한국에 ‘성난 젊은이들’이 있었다. 21세기도 1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그들은 성이 나 있다. 어떤 이들은 아직 체제의 모순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 매우 예외적인 경우. ‘왕년의 성난 젊은이들’이 지금도 잔뜩 성이 나 있는 이유는 대개 까마득한 부하 직원이 수라장을 헤쳐온 내 경험담에 또박또박 토를 달거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거래처 담당자의 싸가지가 없어도 너무 없거나, 몇달 전 알바로 썼던 놈이 체불로 신고를 하는 바람에 오늘 아침 근로감독관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왕년의 성난 젊은이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관심 영역도 깜짝 놀랄 정도로 넓다. 한국 사회가 너무 후져서 (진보적이고 유연한 본인 같은 사람이) 살아가는 게 고통스럽다는 절절한 고백과, 자식을 대안학교 보냈는데 (불안해서 고2 때부터 신경 좀 썼더니) 명문대에 갔다는 뿌듯한 자랑을 한자리에서 듣고 있으면 절로 유체이탈을 체험하게 된다. 이들을 만나면 꼭 입에 걸리는 소재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다. “이 미친놈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서부터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면 세대론으로 검증할 책임이 있는 게 아니냐”는 요구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최근 나는 일베에서 유통되는 담론을 보는 시각을 수정했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인터넷 여론조작이 이 정도로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벌어졌다면 일베의 담론을 더는 ‘자생적 넷우익 담론’으로 인정해줄 수 없다. 다만 권력의 개입과 별개로 ‘일베적 코드’를 주도하는 주체를 어림잡아볼 수는 있다. 국정원의 냄새가 지나치게 짙게 밴 전라도 혐오, 민주화세력 혐오 담론과 달리 소위 ‘김치녀’ 혐오 담론에서 좀더 명확히 일베의 주체가 드러난다는 생각이다. 바로 ‘성난 젊은 예비역’(angry young reservists)이다.
이는 모든 일베 유저가 실제로 예비역이라는 말도, 김치녀 혐오가 일베에서만 나타난다는 뜻도 아니다. 젊은 예비역 남성들 중 일부의 특징적 성향이 일베에서 가장 높은 밀도와 가장 강한 강도로 표출된다는 의미다. ‘성난 젊은 예비역’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부상한 온라인 집단 정체성이다. 2001년 ‘월장사태’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여학생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등 학내 군사문화를 문제 삼으며 예비역들을 비판한 어떤 칼럼이 알려지자 젊은 예비역 남성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폭행협박, 욕설은 물론이고 전화로 폰섹스를 요구하거나 편집부 신상정보를 성인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당시의 전선은 여성주의자 및 남성 진보주의자와 성난 젊은 예비역 사이에 그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공격 대상은 여성부, 된장녀(김치녀) 등으로 확대됐다.
“신성한 의무”라 포장하지만 인생의 가장 뜨거운 시기를 ‘꼬라박아야’ 했던 기억은 고통스럽다. 가진 자들의 군 면제율은 터무니없이 높고, 군가산점은 폐지되었으며, 여자 동기들은 취업했다. 생존경쟁은 날로 치열해지는데 제대해보니 내세울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시장의 논리로 사회 안전망과 공적 공간을 맹렬하게 해체해온 한국 사회는 젊은 예비역 남성들의 피해의식과 공격성이 증폭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피해의식과 생존에 대한 불안감은 ‘자격 없는 자들’에 대한 증오로 쉽게 전환된다. 김치녀는 자격 없이 누리기에 비난받아야 하는 타자의 하나로 ‘발명’되었다. 물론 사회구조를 핑계로 혐오발언이나 언어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비판과 제재는 당연하다. 그러나 ‘왕년의 성난 젊은이들’은 명심해야 한다. 그들이 “인간말종”, “루저”라 부르는 존재들은 바로 그들이 만든 사회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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