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권력은 무섭다!
강기훈씨가 ‘유서대필’이라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누명을 23년 만에 벗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강기훈씨는 13일 무죄 판결 뒤 제일성으로 “이 사건에 관여한 검사들 모두 어떤 형태로든 유감 표명을 해 달라”고 말했다. 신문에 난 당시 검사 등의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신상규 주임검사, 남기춘, 곽상도 검사, 강신욱 서울지검 강력부장, 정구영 검찰총장, 그리고 김기춘 법무부 장관….
그들의 마음속에도 ‘측은지심’이 있었을까? 측은지심은 맹자가 말한 인간 양심의 기본이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면 깜짝 놀라 달려가 구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들은 반대였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강기훈씨를 ‘유서대필’이라는 누명을 씌워 ‘지옥’에 빠뜨렸다. 당시 그들의 가슴속엔 ‘측은지심’ 대신 권력을 지키려는 ‘공안지심’만 가득했을 것 같다. 이렇게 인간의 양심까지 버리게 하는 권력이 무섭다.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뒤, 약 60일 동안 13명의 젊은이가 정권의 비민주성을 규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노태우 정권으로서는 1987년 6월항쟁 같은 전국적 민중항쟁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정구영 검찰총장이 나섰다. 그는 젊은이들이 목숨까지 바치며 한 그 외침들을, “체제 전복을 위한 거대한 배후 세력의 조종을 받은 것”으로 매도했다. 그리고 강기훈씨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같은 해 5월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분신으로 항거하자, 그의 유서를 대신 써주었다는 혐의로 강씨를 구속기소했다.
그를 오랫동안 변호해온 이석태 변호사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검사들도 강기훈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 검사들이 강씨를 구속기소한 데 대해 “정치적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들불같이 일어나는 민중의 저항을 조작 사건을 통해 꺾은 것이다. 실제로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위는 ‘유서대필 사건’ 뒤 급격하게 세력을 잃었다. 반대로 담당 검사들은 ‘측은지심’을 버린 덕인지, 그 뒤로 승승장구했다.
그 일로부터 23년이 지났지만, ‘권력은 무섭다’는 느낌은 오늘까지 현재진행형이다.
강기훈씨를 ‘사법적으로 살해한’ 그 사건을 총지휘했을 수 있는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8월5일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돌아왔다. 국정원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불법 지원한 ‘댓글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고, 국정원 해체 목소리에 세상을 뒤덮던 때였다.
그가 취임한 지 채 한달도 안 된 8월28일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터진 것이다. 현역 의원이 관여된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초유의 상황 앞에, 국정원 해체 목소리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닮지 않았는가. 기소된 죄명은 다르지만, 권력이 커다란 정치적 위기를 맞으면 반드시 ‘엄청난 사건’이 터진다는 법칙은 20여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이석기 사건’은 1심에서만 총 40여 차의 공판이 진행됐을 정도로 복잡한 사건이다. 하지만 강기훈씨 사건은 그 복잡함을 단순하게 볼 수 있는 혜안을 우리에게 준다. ‘권력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터진 사건은,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조작해낸 사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강기훈씨 사건은 또 ‘아무리 똑똑한 검사라도 진실을 영원히 감출 수 없다’는 점도 일깨워준다.
오늘은 마침 ‘이석기 사건’ 1심 선고일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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