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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동북아, 국익과 지역이익 / 이수훈

등록 2014-02-17 18:34

이수훈 경남대 정치사회학 교수
이수훈 경남대 정치사회학 교수
1년 전 동북아 각국에 새 지도부가 들어섰을 때 동북아 미래에 대해 밝은 전망을 할 근거는 별로 없었다. 역내 지정학 자체가 거대한 지각변동에 직면한 나머지 구조적 불안정을 안고 있었다. 각론적으로는 영토분쟁과 역사갈등이라는 고난도의 과제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게다가 이 과제들을 관리해갈 집권 세력이 한·중·일 3국을 가리지 않고 강경보수 일색으로 구축되어버린 나머지 상황 관리가 무척 경색되게 전개되었다. 어느 일방이 작용하면 상대방이 반작용하는 강 대 강의 기계적 대응만이 기승을 부렸다.

그 결과 우리는 2013년 내내 격랑이 몰아치는 동북아 정세를 겪어야 했다. 영토분쟁은 이전보다 한층 악화되었고, 지난 연말에는 중국이 취한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인해 영공분쟁이라는 새 과제가 등장하였다. 바다와 하늘을 가리지 않고 평화로운 곳이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탈냉전이 진전되고 남북 간 화해협력 분위기가 만들어진 나머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전쟁은 없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는데, 이제 그 자신감도 객관적 근거를 가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암울한 동북아 정세를 지탱하는 명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익의 논리다. 동북아에는 지금 오직 국익만 전면에 나서 있다. 그런 탓에 동북아에는 ‘지역이익’이라는 인식 자체가 실종되고 없다. 지역이익이란 국익보다 좀 높고 넓은 이익으로서 협력·통합·공동체 같은 가치로부터 발생되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와 공동번영의 지역질서가 있는 곳에서는 개별 국익이 지역이익과 조화롭게 선순환할 수 있다. 완벽하지 못하나마 유럽이 이런 지역질서를 누리고 있다. 호시절에는 과실을 공동으로 따먹고, 어려운 시절에는 고통을 나누어 대응해나간다. 동북아에는 정반대로 국익이 지역이익을 아예 원천봉쇄하는 흐름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동북아의 비극이자 불행이다.

이 비극과 불행의 폐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보통 국민들의 복리와 평화가 후순위로 밀리고,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할 분위기가 훼손된다. 일본에 ‘혐한’ 주제의 책들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우리 유학생들의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풍문도 들린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반대하기 위해 한국 대학생 ‘원정대’가 도쿄에서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했다는 뉴스도 있다. 상층에서 만들어진 환경 탓에 저변이 망가지는 생생한 사례들이다.

전통적으로 동북아 문화권은 지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 시대가 바뀌고 민주주의가 진전되었는데도 이 점은 변함이 없다. 더불어 지도자 주변의 정치인들과 집권세력의 인식 자체가 갖는 파괴력과 영향력이 막강하다. 지금 그 인식이 너무 협소하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국익을 실질적 국리민복의 확장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로 이용하거나 파당적 목적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현재 동북아는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 들어 있고 일종의 혼돈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럴 때 정치지도자가 국가를 바로잡아보겠다는 ‘소명의식’에 빠질 유혹이 생긴다. 하지만 그런 소명의식은 보편적 흐름과 불화를 이룬 나머지 대개 파탄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세계사에 비추어볼 때 이런 시기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 국익·안보·정상과 같은 그럴싸한 레토릭에 무작정 박수를 보낼 것이 아니라 때로 경계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2014년 갑오년에 동북아 과거사를 반추하면서 지금 동북아 각국 지도자와 집권세력이 내세울 깃발은 지역이익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지역이익을 부르짖고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편이 진정한 국익에 이바지하는 길이라는 역설을 제기해본다.

이수훈 경남대 교수 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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