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미군문제팀장
한·미 당국이 9차 미군주둔비부담(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이하 9차 협정)에 정식 서명했다. 그 주요 내용은 2014년도분 9200억원, 연도별 인상률 전전년도 소비자물가지수(CPI) 적용(상한선 4%), 배정 단계 사전조율 강화 등 ‘제도개선’, 협정기간 5년 등이다. 정부는 이 협정을 국회에 넘겨 비준동의를 요청하고 있다.
9차 협정은 한마디로 미국 요구에 굴복한 ‘미국 퍼주기’ 협정이다. 2014년도 미군주둔비부담금(이하 부담금) 총액 9200억원은 2013년도 편성액보다 무려 25%나 늘어난 액수다. 지난해 7월 새누리당과 정부가 당정협의에서 감액을 목표로 제시한 것과 상반되는 결과다. 이로써 우리는 향후 5년간 매년 1조원 가까운 예산을 미국에 지급해야 한다. 더구나 한·미 당국은 부담금 미집행액을 1조3000억원 넘게 쌓아두고 있다. 이 돈은 우리 국민 혈세인 부담금으로 미2사단 이전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축적된 것이다. 이는 미2사단 이전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협정에 어긋나는 것이다. 더욱이 주한미군사령부는 자신들이 축적하고 있는 돈을 부동산 펀드 등에 투자하여 3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자소득을 올려 미국 국방부에 송금했다. 한·미 당국은 이 사실이 폭로된 2007년부터 이 사실을 숨겨오다가 물증이 제시되자 어쩔 수 없이 이자소득을 인정하면서도, 미국 정부는 이 돈을 받지 않았다는 또다른 억지를 부리고 있다. 도대체 전세계 어느 나라에 남의 나라 국민 혈세를 해마다 빼돌려 돈놀이하고 거기서 나온 이자소득을 본국에 송금하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주한미군사령부는 부담금을 미국 의회에서조차 ‘공돈’처럼 쓰인다고 지적할 정도로 흥청망청 써왔다. 이를 감안하여 한·미 당국은 몇 가지 ‘제도 개선’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는 부담금의 불법·부당한 집행의 원천이 되는 미2사단 이전비용 전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를 갖는다. 정부도 협상 초기에는 부담금의 미2사단 이전비용 전용 방지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완강한 거부로 정부의 방침은 포기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8차 협정의 최대 성과로 자랑했던 내용마저 후퇴했다는 점이다. 부담금 항목 중 군사건설비가 현금으로 지원되면서 축적과 이자소득 논란이 빚어지자 한·미 당국은 8차 협정 때 현금지원을 88%까지 현물지원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내용이 9차 협정에서는 아예 빠져버렸다. 협정이 5년 전으로 후퇴하여 주한미군사령부가 또다시 현금으로 받은 한국민 혈세를 제멋대로 쓸 수 있게 허용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협정기간을 5년으로 한 것은 미군기지 이전사업이 완료되는 2016년 이후에도 1조원 안팎의 부담금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한·미 당국은 평택미군기지 이전사업 때문에 미뤄진 기존 미군기지 군사건설사업이 산적해 있어서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 미군기지 군사건설사업에도 이미 여러 항목의 부담금이 투입되어 왔고, 미국 자체 예산도 투입되었다. 결국 미국은 전체 미군기지 이전비용 중 자체적으로 부담하려고 했던 고작 7%마저 부담금으로 충당하거나,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에서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 주한미군 가족주택 임대료나 주한미군사령부 지휘통제체계(C4I) 개선자금 등 다른 용도로 이 돈을 쓰려는 것이다. 이처럼 이번 협상 결과는 총액과 미군기지 이전비용 전용 방지장치 마련, 협정 유효기간 등 모든 면에서 ‘미국 퍼주기’ 굴욕협상이라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평통사의 공익감사청구에 대해 위법·부당 사항을 발견할 수 없다는 등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국회는 9차 협정 비준동의안을 부결시키고, 국회 차원의 감사원 감사청구, 청문회, 공청회 등 국회가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행사하여 미군주둔비부담 제도와 운용의 불법 부당성을 밝혀야 한다.
유영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미군문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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