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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염전 노예 사건은 장애인 인권 침해 문제다 / 이태곤

등록 2014-02-24 18:39

이태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이태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전남 신안군 일대에서 적발된 속칭 염전 노예 사건과 관련해서 사회적인 파문이 커지고 있다.

염전 노예 사건은 이달 초 신안군 일대 염전에서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착취당하던 장애인 두 명이 경찰에 의해 구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단속 과정에서 처음 구출한 두 명의 장애인 외에도 최근 서너 명의 지적장애인들을 더 신안 염전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경찰이 이번 단속 과정에서 염전 노예 문제를 장애인과 노숙인 등 우리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착취와 학대라는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순 임금 체불 문제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라 경찰이 언론에 발표하는 내용도, 가령 업주 진아무개씨가 장애인 이아무개씨를 고용해 일을 시킨 다음 임금을 주지 않고 외출할 때 용돈만 지급했다는 식으로 임금 체불 문제만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장애인이 염전에서 노예처럼 일하면서 어떤 대우를 받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면서 어떤 인권침해를 당했는지 여부는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지적장애인이 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염전에 끌려갔고, 장애인이 염전에 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래서 이 장애인 염전 노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와 같은 이번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은 전혀 공론화가 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사실 섬 등 도서 지역에서의 장애인 착취와 학대에 대한 문제는 근절되지 않고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문제다. 이번 사건처럼 잊을 만하면 장애인 노예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다. 돌아보면 판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적장애인 등이 섬이나 새우잡이 배 등에 끌려가 사실상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데에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무관심이 문제의 근원인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지적장애인 등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장애인은 실종돼도 누구도 찾으려고 하지 않고, 관심도 갖지 않고 있고, 노예 상태에 놓여 있어도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게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다. 장애인들에게 있어서는 국가가 국민을 버렸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지금 갈 곳 없는 성인 지적 발달 장애인들의 처지가 심각하다. 성인이 된 지적 발달 장애인들의 경우 갈 곳이 거의 없으니까, 거리에 나가 방황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역 근처에 가게 되고, 거기서 악덕 직업소개 업자들 손에 이끌려 도서 지역 염전이나 양식장 등에 보내지고 있다.

일단 염전이나 양식장 등에 보내진 장애인들은 자력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환경에 갇혀 지내면서, 아무 잘못도 없는데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노예로 살다가 인권의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한 채 평생을 일만 하다가 결국 잊혀진 죽음으로 어느 섬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염전 노예 사건으로 신안군만 표적이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도서 지역은 신안군 한 지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섬에서, 또 어느 망망대해 새우잡이 배에서, 그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어느 목장에서 장애인들이 지금 이 순간 인권을 유린당한 채 착취를 당하고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장애인 노예 사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정부가 얘기하는 단속이 아니다. 이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고, 최소한 지적장애인 등이 갈 수 있는 곳을 마련하고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가해자를 엄벌하는 법률적 대안 마련도 시급하다.

이태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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