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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 칼럼] ‘겨울왕국’ 속 한국 언론

등록 2014-03-03 18:39

권태선 편집인
권태선 편집인
<겨울왕국>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환상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음악의 조화 등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불러들인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조차 이 동화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 데는 겨울왕국에 비견할 만큼 어둡고 답답한 우리의 현실을 녹여낼 사랑의 눈물에 대한 갈구 또한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언론의 현실만 해도 그렇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올해 180개 나라 가운데 57위를 차지했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시작된 뒷걸음질이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계속돼 올해에는 일곱 계단이나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31위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해 본다면 우리 언론의 처지가 지난 6년 사이 얼마나 악화됐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터다. <와이티엔>(YTN) 노종면 기자를 필두로 이명박 정권 아래서 거리로 내쫓긴 언론인들 가운데 누구 하나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고, 공영방송에 대한 정권의 입김은 오히려 강화됐으니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문제는 추락하는 언론자유지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통의 공기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것 역시 못지않게 큰 문제다. 지난 주말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창간 축하연에 참석했던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걱정한 것도 바로 이런 한국 언론의 현실이었다. 언론이 제대로 된 대화와 소통의 장으로 기능해 우리 사회의 극단적 대립구조를 완화해 나갈 수 있게 해야 함에도 현실은 오히려 그 역으로 대립을 증폭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는 데 대한 개탄이었다.

민주사회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언론을 포함한 우리 사회의 담론 지형이 극도로 왜곡돼 있는 탓에 서로 다른 의견들이 공론의 장에서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성숙해 가기가 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이들이 자신들과 다른 의견에 대해 단순히 무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다. 인터넷이나 종편, 또는 일부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상대방의 주장에 경청할 대목이 있는지 살펴보려는 진지한 노력보다는 날 선 언어로 인신공격을 퍼붓는 데 쾌감을 느끼는 배설형 인간들이 설쳐댄다. 이런 상황은 합리적 인사들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구실을 한다.

트위터를 통해 임직원이나 사회와 열심히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공론의 장에서 합리적 대화의 공간을 축소시키는지 보여주는 예다. 아리아나 허핑턴 <허핑턴포스트> 회장은 지난달 27일 그를 방문해 블로거로 활동해줄 것을 요청했다. 박 회장은 하고 싶지만 하기 어렵다고 완곡하게 사양했다. 트위트를 통해 자신의 일상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 쟁점에 대해 소신을 밝혔을 때 건강한 논평 대신 인신공격적 반응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며, 기업과 단체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합리적 대화를 막는 여론지형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날카로운 얼음벽으로 차단된 소통불능의 겨울왕국으로 만드는 근본 원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불통의 겨울이 깊을수록 소통의 봄에 대한 갈망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바야흐로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이제 우리 언론도 서로 갈라놓고 있는 얼음벽을 녹이고, 공론의 장에 소통의 훈풍이 불게 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여론광장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는 보수언론 대 민주언론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과 더불어, 그동안 공론의 장에서 소외되거나 억압돼 왔던 이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고 그 목소리를 정당하게 대우하는 게 중요하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내건 ‘인생은 뉴스로 가득하다’는 슬로건에 많은 이들이 관심과 지지를 보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존에 우리가 뉴스라고 알고 있던 것뿐만 아니라 장삼이사들의 다양한 의견과 소소한 삶의 이야기도 뉴스와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고 존중하는 것 또한 여론광장의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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