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전격적으로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무관심하던 야권지지층도 서서히 꿈틀대고 있다. <중앙일보> 조사 결과를 보면 신당 지지율이 36%로 새누리당(40%)을 바짝 쫓고 있다.
거의 존재감이 없던 민주당은 신당 창당을 통해 입지를 회복할 계기를 찾은 듯하다. 새정치연합도 궁박한 처지에서 벗어나 ‘새정치’를 현실화시킬 물꼬를 튼 것으로 보인다. 이제 야권은 새누리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듦으로써 견제세력으로서 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어지럽던 구도가 ‘정부 여당 심판론’으로 정리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통합만으로 추락한 민심의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 터. 대중들은 이미 수차례 비슷한 방식의 ‘이벤트’를 경험했고 이것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정치공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제3지대 신당 창당은 2007년 새통합민주신당으로 이미 시도된 바 있고, 통합 및 합당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문제는 이런 ‘정치공학’이 선거를 앞두고 이기기 위한 목적에서 급조된 것이 아니라 ‘새정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신당이 어떠한 가치와 노선, 정체성을 추구할 것이냐의 문제다.
벌써부터 신당이 중도 노선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 들린다. 신당 선언을 이끈 두 주역,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그간의 행보로 볼 때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진보적 유권자는 어차피 신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으니 지방선거에서 이기려면 중간의 유권자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정치공학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선거 승리를 위한 공학적 계산이 아니라 원칙, 대의명분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그 원칙과 대의명분은 무엇일까? 더 많은 유권자, 더 많은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다. 이는 진보냐 중도냐의 문제가 아니라 더 아래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벼랑 끝에 선 이들, 정치에서 배제된 이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에는 거리감을 느끼지만 야권은 못 믿겠다는 이들, 진보적 가치는 공감하지만 믿을 만한 정치세력을 찾지 못한 이들, 무엇보다 정치에서 배제되어왔던 가난한 이들, 사회적 약자들을 포괄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새정치’의 도화선이 된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자신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었다. 희망을 찾기 어려운 88만원 세대 청년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들, 그리고 상식과 원칙을 기대하던 중산층까지… 이런 ‘안철수 현상’을 담는 것이 신당의 가치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신당은 왜 새누리당이 아니라 신당을 지지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명분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의 문제다. 새누리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는 어떤 메시지, 감흥도 주지 못한다. 정책과 어젠다 면에서의 차별화는 필수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난 대선이 명확히 보여준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야권의 의제를 박근혜 후보 쪽도 수용하면서 차이가 모호해졌고 왜 야권을 지지해야 하는지 명분이 흐려졌다. 이제 차별화는 어젠다 제기를 넘어서 정책의 실현 가능성, 이를 뒷받침하는 방법론, 그리고 누가 더 제대로 정책을 이행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주체의 능력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더 깊이, 더 진정성 있게 어젠다를 제기하고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
신당, 정치공학이라는 비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더 아래로 내려가서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들을 대표해야 한다. 선거 승리라는 단기적 목적을 넘어 원칙에 입각해 우직하게 가야 한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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