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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통일부 폐지’, 이제 누가 막아줄까 / 김보근

등록 2014-03-09 18:28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박근혜 대통령이 곧 통일부 폐지 선언을 하지 않을까?’

2월25일 박 대통령의 ‘통일준비위’(이하 통준위) 발족 담화를 보며 든 생각이다. 통준위와 통일부의 기능 중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앞으로의 구도가 ‘칭찬받는 통준위’ 대 ‘비판받는 통일부’로 짜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때 ‘정치적 감’이 뛰어난 박 대통령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 못한 통일부를 없애고, 통준위를 통일준비부로 확대한다”고 발표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이다.

완전히 터무니없는 얘기도 아니다. 우선 통준위를 통한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몰이’는 계속 확대될 것이다. ‘국민적 통일논의를 수렴하고 구체적인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만들’ 통준위에 어떤 인물들이 참여하는지부터 화제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로 구성된 통준위가 ‘5·24조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를 대통령에게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대통령은 이 요청을 고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받아들일 것이다. 이 경우 박 대통령은 ‘5·24조처’ 같은 뜨거운 감자를 오히려 국민의 호응을 받으면서 풀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반면 통일부는 어떤 재량권도 못 가진 채 계속 ‘악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남북경협 피해자 등이 찾아가면 통일부는 제도 탓을 하며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는 비판이 높다. 남북의 언론·문화·학술교류에 대해서도 현행법을 거론하며 ‘처벌’의 으름장만 놓는다. 무엇보다 북이 남에 대해 어떤 문제제기를 하기만 하면, ‘진정성’과 ‘유감’이라는 표현을 총동원해 북쪽을 비판하고 나서는 것도 통일부다.

이런 모습이 국민들에게 과연 어떻게 비칠까. 오죽하면 여당인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정낙근 통일연구센터 기획실장이 “대북 교류협력과 관련한 각종 민원을 들고 통일부를 찾아가면 대다수 을의 위치로 취급받아, 안 되는 이유를 수백가지 듣고 실망하면서 돌아 나온다”(<한겨레> 2월24일치 ‘박근혜 정부, 통일대박론을 넘자’ 기획시리즈 마무리 좌담)고 평가했겠는가.

이런 구도에서라면 국민들은 한쪽을 ‘민족의 화해협력으로 가는 새 길을 모색하는 기구’로, 다른 한쪽을 ‘낡은 제도에 매몰된 조직’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판을 크게 그리는 대통령이 이런 구도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미 관가에서는 박 대통령이 통일과 관련된 여러 준비 프로젝트를 통일부가 아닌 다른 부처에 맡기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2008년 초 이명박 정부 인수위가 통일부 폐지 가능성을 얘기했을 때 ‘국민들’이 반대 목소리를 냈다. ‘통일부가 남북화해를 위해 온몸 바쳐 헌신한다’는 국민적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에 힘입어 통일부는 폐지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문제는 이제 ‘통일부의 우군’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통일부 폐지를 선언하지 않더라도, 통일부는 국민들 마음속에서 이미 죽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누가 다시 통일부를 국민들 마음에 뿌리내리게 할 것인가. 박 대통령은 아닐 것이다. 그는 이 구도의 가장 큰 수혜자다. ‘국민 마음속 통일부’가 되는 출발점은 통일부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통일정책 구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때로는 다른 부처와 충돌해 시끄러운 소리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열정’을 보았을 때만 국민들이 2008년 같은 신뢰를 통일부에 보낼 것이다. 이런 움직임의 맨 앞에 누구보다도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있어야 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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