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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재현 가능성 / 김우재

등록 2014-03-10 18:35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장하석 교수의 과학철학 강의가 인기다. 과학철학은 과학의 성격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강의엔 포퍼의 반증 가능성, 쿤의 패러다임, 관찰의 이론적재성처럼 난해한 개념들이 등장한다. 초창기 과학철학은 과학자로 훈련받은 이들이 주도했다. 쿤은 물리학자로, 포퍼는 심리학자로 훈련받았다. 과학철학이 전문화되면서 이 학문은 과학에서 멀어졌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과학철학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현장의 과학은 과학철학이 명료하게 설명하는 형태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연을 충분한 확실성으로 설명하기 위해 과학이 걸어가는 길은, 교과서가 기술하는 방식의 고속도로 주행이 아니다. 과학자들이 진실을 발견하는 방식은 오히려 미로찾기와 비슷하다. 그래서 현장의 과학자들은 과학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합의를 지니고 있다. 과학철학은 이와 같은 과학자들의 현장 지식을 다루지 않는다. 과학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당연해서 과학철학자들이 다루지 않는 개념들, 그중 하나가 ‘재현 가능성 혹은 재현성’(reproducibility) 문제다.

일본 연구자 오보카타의 STAP 줄기세포 재현성 문제가 과학계에서 연일 화제다. 브릭과 같은 한국 생물학자들의 커뮤니티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연구소들이 연구 결과의 재현성을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일반적으로 재현성은 유사한 상황에서 동일한 측정값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실험과학에서 재현성은 과학자들의 연구와 결부된 가장 중요한 현실적 문제다. 난관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모순은 다음과 같다. 출판된 논문은 재현 가능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어떤 과학자도 출판된 논문을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미 발표된 논문을 정확하게 반복한 결과는 출판될 수 없다. 곧, 대부분의 실험과학 결과물은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반복 시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해당 논문의 재현성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그 논문이 다루는 주제가 정말 중요할 때뿐이다. 오보카타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재현성과 반복성(replicability)의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학의 발전에 중요한 것은 재현성이지 반복성이 아니다. 이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연구자의 연구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자들은 해당 결과의 조건을 조금씩 바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싶어한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번 담글 수 없듯이, 연구의 조건은 모든 실험실마다 조금씩 다르다. 반복성은 절대로 확신될 수 없다. 하지만 재현성은 다르다. 연구 결과가 재현 가능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자연에 존재하는 견고한 토대를 발견했다는 의미다. 이 토대를 발판으로 삼아 과학은 전진할 수 있다. 하지만 반복성은 결과가 내포한 자연상태의 견고성에 대해 아무것도 시험하지 않는다. 반복성은 과학발전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오보카타 줄기세포 재현성 논란의 핵심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조금씩 다른 조건에서 그녀의 연구가 재현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오보카타는 최근 상세한 프로토콜을 출판했다. 그 방법을 따르면 결과는 반복될지 모른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원하는 것은 반복성의 문제가 아니라 재현성의 문제다. 그녀의 조건대로 실험이 반복된들, 1주일 미만의 어린 생쥐에게서 얻은 세포로만, 그것도 특정한 조건에서 어렵게 가능한 것이라면, 이 연구 결과가 과학에 기여할 여지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네이처>엔 그런 논문들이 많다.

재현성의 문제는 이처럼 복잡한 과학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과학철학자들은 이 문제엔 관심이 없다. 장하석 교수는 그 답을 알고 있을까?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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