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 ‘합리적 무시’라는 개념이 있다. 소수의 똘똘 뭉친 집단의 이익 추구 행위가 사회 전체에 불이익을 끼치는 현상을 뜻한다. 불이익은 다수의 산만한 대중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대중 개개인으로서는 불이익보다 이를 회피하는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무시된다는 것이다. 부도덕한 정치권력과 관료가 합리적 무시에 빠질 경우 사회 전체의 불이익은 더욱 커진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81년에 경제재건계획을 발표했다. 뼈대는 감세와 규제완화였다. 레이건 정부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규제완화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업인 출신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규제로 불편을 겪는 집단으로부터 규제개혁의 동력을 얻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레이건 정부에서 기업 관련 규제는 강화된 경우도 많았다. 투자은행가인 로버트 몽크스(82)는 1991년에 낸 <권한과 책임>이라는 책에서, 특별위원회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각종 규제가 어떻게 굴절됐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우리는 영향력이 큰 기업 또는 이익집단의 법적 책임이나 경쟁이 줄어들 때 규제는 더 강화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규제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공익을 해치는 기업의 행위까지 합법화되기도 했다.”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혁 민관합동 회의가 열린 뒤 경제단체들의 잰걸음이 눈에 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몇몇 안건을 놓고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하며 여론몰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한상의는 앞으로 전국 광역지자체 17곳의 규제 현황을 주기적으로 파악해 평가하겠다고 한다. 규제의 대상이 규제를 바꾸는 주체로 나선 모양새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규제는 정치적으로 ‘보이는 손’에 따라 설계되고 집행돼야 한다. 특정 이익집단의 정치적 힘으로만 규제개혁을 밀어붙이면 공정성을 얻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에는 1%의 혜택만 부각되고 99%의 손해는 무시되고 있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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