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세 모녀 사건’ 이후 한달이 흘렀다. 이 사건도 점차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만은 쉽게 잊어선 곤란하다. 그래선 안 된다. 무엇보다 그 메시지는 오늘의 우리네 삶은 물론 이 나라 미래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실업, 질병, 노령 등 사회적 위험이 닥쳤을 때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가 사회안전망인데, 그것이 총체적 기능부전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세 모녀의 죽음은 그 명백한 증거다. 세 모녀 사건은 기능부전의 사회안전망을 정밀진단해 시급히 대수술을 하지 않으면 유사한 비극은 쉼 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죽음의 경고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건 이후 나타난 정부 정책과 정치권의 대응은 이런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다. 또다시 낡은 도돌이표 모양새다.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거나 관할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이 상황을 알았다면… 여러 지원을 받았을 텐데”라는 대통령의 인식부터 핵심을 비켜 갔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대책도 대통령의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정부 대책은 ‘발굴과 관리’로 집약된다. 부정 수급자를 색출했듯이 이번에는 비수급 빈곤층을 미리 찾아내 특별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이달 동안 일제조사를 실시하는 등 사각지대 발굴에 나섰다. 홍보강화 약속도 잊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 안전행정부 등도 복지공무원 확충 계획을 밝히고 절차에 들어갔다.
정부 대책이 전혀 약효가 없지는 않을 터. 하지만 효과도 미미할 것인데다 무엇보다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대책을 세운 담당 공무원도 이를 잘 알 것이다. 세 모녀 비극은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문제다. 그렇다면 이런 사각지대가 왜 발생하는가? 핵심 요인은 무엇인가? 복지전달체계 등 정책운용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핵심은 아니다. 사회보장제도 자체가 사각지대의 발생을 내장하고 있는 게 문제의 뿌리다. 홍보를 강화하고 공무원 수 좀 늘린다고 해서 ‘세 모녀 비극’을 예방할 수 없었을 것이란 진단도 이런 이유에서다. 허선 교수(순천향대)의 말을 빌리자면 “세 모녀 사건은 우리나라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의 종합판”이다.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적 기둥인 산재보험·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은 세 모녀의 비극을 막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긴급복지지원 등 공공부조 제도도 제 기능을 못했다. 소득에 비해 감당하기 버거웠던 월세와 가스비, 전기료, 수도료 등 주거비용은 비극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세계에 자랑해온 건강보험제도는 남성 가장의 중병에 따른 가계 파탄을 막지 못했고, 오히려 비극의 서막을 열었을 뿐이다. 이게 2014년 경제규모 세계 11위를 자랑해온 대한민국 복지의 현주소다. 실체다.
그렇다면 ‘세 모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무엇인가?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대로 구멍 뚫린 사회보장제도를 철저히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안전하고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은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기본권’이란 시각에서 제도 전반을 획기적으로 손질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진단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복지를 주창해 당선된 대통령이 어찌 규제개혁을 위해선 7시간 끝장토론을 진두지휘하면서 이 나라 수많은 서민들의 벼랑 끝 삶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는 차치하더라도 ‘범정부 차원의 사회안전망 대책회의’조차 열지 않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한때 주창한 ‘한국형 복지국가’는 사회안전망 사각지대 해소 없이는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세 모녀 사건 이후에도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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