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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허재호와 강정마을 벌금 / 권혁철

등록 2014-03-25 18:33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광주교도소에서 하루 8시간 쇼핑백에 풀을 붙이는 일을 하면서 하루 5억원씩 벌금을 갚고 있다. 벌금을 낼 돈이 없을 경우 교정시설에서 일을 해서 벌금을 탕감하는 환형유치 제도가 적용된 것이다. 지난 22일 뉴질랜드에서 귀국하기 전에는 현지에서 요트와 카지노 도박을 즐겼다는 허 전 회장이 정말 돈이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서민들이 벌금을 내지 않아 노역장에 유치되면 대개 5만원에서 10만원을 탕감한다. 허재호 전 회장은 이보다 1만배나 몸값이 비싸다. 허 전 회장의 하루 5억원짜리 ‘황제 노역’을 보면서, 나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다 벌금폭탄에 초토화가 된 서귀포 강정마을 주민들이 생각났다. 내가 보기엔 허 전 회장에게 봄의 미풍처럼 관대한 법의 잣대가 강정마을 주민에겐 추상같다.

사람들의 관심에선 멀어졌지만 강정마을 어귀엔 ‘해군기지 결사반대’ 노란 깃발이 여전히 나부낀다.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서 천주교 사제들의 ‘생명평화 미사’도 계속 열리고 있다. 7년째 제주 해군기지 공사를 반대하다 강정마을에서 체포·연행된 사람이 663명, 누적 구속자 38명, 재판 결과 형이 확정된 사람 230명, 벌금 액수는 3억원이 넘는다. 벌금 폭탄에 강정마을 공동체는 바람에 날린 우박처럼 흩어졌다.

벌금 3억원은 감귤 농사를 짓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보수세력들이 외부세력이라고 손가락질하는 평화지킴이들에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3억원이 뉘 집 애 이름이냐”고 답답함을 호소한다.

강정마을 평화지킴이들 사정도 비슷하다. 생업을 접고 강정마을에서 지내는 이들은 휴대전화 요금도 낼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고 한다. 이들은 시간 날 때마다 강정마을 근처 귤밭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정도다. 지난해 3월과 8월, 150만원과 2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평화지킴이 2명이 ‘부당한 벌금을 낼 수 없고 낼 돈도 없다’며 제주교도소 노역장에 자진 수감됐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벌금과 재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제주 특산물인 한라봉, 흑돼지 등을 팔고 있다. 지금까지 각계각층에서 모금과 전시, 판매 등을 통해 성금을 모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벌금과 재판 비용을 대기엔 태부족이다.

지난해 12월엔 벌금을 갚기 위해 후원계좌를 개설해 시민들에게 후원금을 모집한 강동균 당시 강정마을 회장이 제주지법에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혹(벌금)을 떼려다 혹(벌금)을 하나 더 붙인 셈이다. 현행법상 기부금이 1000만원을 넘으면 도지사에게 등록해야 하는데 강 전 회장은 등록을 하지 않아 기소됐다. 강정마을회는 “검찰이 순수한 마음으로 강정 주민을 도와주려던 단체나 개인들을 뒷조사해 시민 후원까지 막았다”고 반발했다.

보다 못한 각계 인사들이 나섰다. 강정마을 주민 등의 재판 비용이나 벌금 등을 나눠 지기 위해 강정법률지원모금위원회가 26일 출범한다. 모금위에는 강정힐링포차를 운영하던 오영애씨, 김선우 시인, 김정욱 예수회 신부, 김정훈 전국교직원노조 위원장,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처장,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이 참여했다.

강정마을 주민 등이 물어야 할 벌금 3억원은 허 전 회장이 교도소 노역장에서 반나절만 쇼핑백에 풀칠을 하면 갚을 수 있는 금액이다. 만약 법원이 허 전 회장처럼 강정마을 주민에게도 노역장 일당을 5억원으로 책정해주면 강정마을 벌금폭탄 문제도 단박에 해결될 텐데…. 현행법이 노역 일당을 법관이 재량껏 정하도록 하고 있다기에, 봄날 오후에 해본 생각이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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