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배포한 간첩 식별법 중에 황당한 건 ‘여관이나 여인숙 등에 장기 투숙하면서 매춘부를 찾지 않는 경우’라는 부분이죠. 여관에 오래 묵을 경우 간첩으로 의심받지 않으려면 성매매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요”(<한겨레> 3월22일치, ‘친절한 기자들’ 이재욱 기자). 기사를 읽다가 너무 웃는 바람에 의자에서 떨어졌다.
위 기사는 남성에 대한 세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첫째, 대한민국 숙박업소에서는 성매매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전화로 여성을 부르기 때문에 ‘전화발이’ 혹은 ‘여관발이’라고 한다) 둘째, 모든 남성은 성 구매를 한다는 자기(경찰청) 생각과 행동(?)을 일반화하는 인식론적 폭력. 셋째, 성 구매가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성(기자)도 있다는 사실, 즉 남성들 간의 차이가 그것이다.
여성주의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오해는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사상이라는 인식이다. 여성주의는 여성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것이며 평등이 아니라 정의를 지향한다. 여성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당파적이지만 인간 해방을 위한 ‘계몽’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모든 사유는 경합하는 운동이지 그것을 독점할 자격이 있는 집단은 있을 수 없다. 당연히 남성 페미니스트는 가능하고 또 절실하게 필요하다.
저자 코넬은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적인 석학으로 남성성 연구의 선구자이며 이 책은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남성으로서 자기 몸의 경험을 성찰하면서 여러 차례 성전환 수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를테면 ‘그녀’는 “트랜스젠더 여성이면서 50대에는 머리가 벗겨지고 아내와 사별했다”.
우리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으로 태어났다. 원래 남녀 차이보다 여성과 여성과의 차이, 남성과 남성 간의 차이가 더 큰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러한 본능을 왜곡하여 인간을 남녀로 분류한 제도가 가부장제다.
남성성의 실천은 여성성의 도움, 동원,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는 분명한 위계가 있지만 동시에 남성성과 여성성은 젠더 구조로서 같은 뜻이다. 그러나 여성성은 남성 사회가 정의하고 남성을 위해 복무하기 때문에, 남성성보다 ‘덜’ 복잡하다. 반면, 남성성은 곧 인간성으로 간주된다. 이 책의 원제처럼 남성성‘들’(Masculinities)이고 복합적이다.
남성성들 간의 협력과 갈등이 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가족, 국가, 계급의 재생산은 물론 문화, 군사, 예술, 스포츠, 자연 파괴 등 인간 행동의 모든 이해에 남성성은 필수적이다. “젠더를 이해하려면 계속해서 젠더를 넘어서야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계급, 인종, 지구적 불평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계속 젠더로 다가가야 한다. 젠더 정치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다.”(123쪽)
공사 영역을 막론하고 남성과 인간관계가 좋거나 말이 잘 통하는 여성은 드물 것이다. 예전에 금성과 화성 간의 거리는 여성의 노력으로 메워졌다. 이제 여성들은 그런 “미쳐 버릴 것 같은” 감정노동 대신 자기 성장에 더 관심이 있다. 결혼 기피와 저출산은 지속될 것이다.
자신이 누군지 모를 수밖에 없는 남성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여자는 자기를 잘 아냐고? 인종 차별 사회에서 유색인종은 자기 처지를 알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
이 책은 ‘학술적’이지만 사례가 풍부하고 성별 이론 전반에 박식한 옮긴이(남성) 주석 덕분에 쉽게 읽을 수 있다. 내가 “책으로 배웠어요” 타입이어서 그런지, 남성은 여전히 놀라운 존재다. 흥미로운 생애사와 쉽게 풀어낸 정신분석, 정치학, 퀴어, 역사 이론은 인문학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이 그들 입장에서는 커뮤니티로의 커밍인(coming in)이라는 논의가 인상적이었다.(226쪽) 지독한 위치성, 이것이 언어의 본질이다.
“진짜 사나이라면 왜 남자답게 굴지 않는 거죠?”라는 뒤표지 문구는 옥에 티다. 판매용 카피라도 좀 참신하면 안 될까. 익숙한 타령이지만 책의 주제와 무관하다. ‘진짜 사나이’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진짜 사나이? 그런 분은 없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