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한달 전 서울을 떠나 파주로 이사했다. 저렴한 주거비용, 쾌적한 환경을 고려한 선택이었지만 하루 3~4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서울로의 출퇴근은 고달팠다. 설상가상으로 이사온 지 며칠 만에, 파주의 한 버스회사가 적자 노선에 대해 운행을 중단했다. 서울로 오는 광역버스 3개 노선 중 2개가 운행이 중단되면서 가뜩이나 힘든 출퇴근길은 더 고달파졌다. 버스회사는 누적된 적자를 더는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고 하지만 파주시는 세금으로 매년 140억원이나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시민들의 출퇴근길은 왜 한없이 힘들고 불편할까?
그래서 버스의 공공성을 위한 정책들이 주요 의제로 부각되었을 때 경기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갑고도 절실했다. 불씨는 버스공영제를 내세운 원혜영 의원이 댕겼지만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은 김상곤 전 교육감의 무상버스 공약 발표 이후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무상급식의 뒤를 있는 승리의 어젠다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는 다르게 무상버스는 우 쪽에서는 공짜버스라는 비난, 좌 쪽에서는 버스의 공공성을 가격논쟁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담대한 정치적 상상력과 기획이라는 점을 백분 인정하더라도 김상곤 전 교육감의 무상버스 공약은 무모했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는 왜 무상버스를 내세웠을까? 아마도 후발주자로서 버스공영제와 차별화하기 위해 더 강력한 공약, 메시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게다가 무상급식을 성사시켰다는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무상서비스 등 보편복지 확대를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로 가져가고 싶었을 것이다. 또 하나, 대중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어젠다를 내세워야 한다는 정치적 감각도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버스공영제는 생소하다. 아무리 중요해도 대중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어젠다가 아니라면 공감을 얻기 힘들다. 그동안 민주진보진영이 제시한 어젠다들이 대체로 그러했다. 이에 반해 보수진영의 어젠다는 이해하기 쉽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제기한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보다 박근혜 후보의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지급’이 훨씬 명료했다. 적어도 무상버스 공약에는 이 같은 고민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준비도 부족했고 성급했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무상은 경제력에 관계없이 시민이 누려야 할 복지이자 마땅한 사회적 권리로 인식되고 있지 않다. 세금 부담도 무상서비스에 대한 거부감에 일조하고 있다.
물론 무상공약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경험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은 보편복지 시대를 여는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사실이 있다. 무상급식 자체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도 반대 여론이 높았다는 점이다. 다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옹졸하고 비합리적인 대응이 대중의 반감을 자극하면서 무상급식 옹호가 대세가 되었다.
무상서비스,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담대한 상상력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는 대중 여론의 미세한 결을 고려해 움직여야 하는 기예에 가깝다. 이제 막 운을 뗀 버스 공영화와 무상버스 어젠다, 무상급식처럼 한달음에 대중의 시선을 휘어잡으려 하기보다 담담하고 우직하게 대중과 호흡하면서 한 걸음씩 나가는 것이 어떨까? 그런 점에서 무상버스가 아니라 공공버스로 바꾸면 어떨까? 아니 다른 이름이라도 좋다. 어쨌든 공공버스라는 소박한 불씨를 조금씩 피워내 그 불씨가 사회 제 분야의 공공성 확산으로 이어지고, 보편복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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