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검찰총장이 지난달 13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리뷰&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국가정보원의 ‘간첩 혐의 증거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미 파장 분위기다. 위조문서를 구해온 국정원 협력자와 대공수사국 과장이 이번 주초 기소된 뒤, 검찰 수사팀 관계자는 “목표는 이번주에 정리하는 것인데, 보완조사나 기록정리, 발표자료 준비 때문에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새로 수사할 인물은 없을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수사를 더 하진 않겠다는 얘기다. 다음주에 한두 명을 더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파다하다.
사전정지 작업은 벌써 시작된 듯하다. 검찰 관계자들은 부쩍 수사의 한계를 말한다. 국정원장의 허가 없이는 국정원 직원을 불러 조사할 수도 없고, 직원을 구속하거나 수사를 시작할 때에는 그 내용을 국정원장에게 통보하도록 국가정보원직원법에 규정돼 있는 등 강제수사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수사가 미치기 힘든 중국이나 국정원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변명도 한다. 그런 얘기를, 여러 사람이 이런저런 자리에서 거듭 말한다.
이번 사건의 성격을 재규정하려는 시도도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3일 국회에서 “‘간첩 조작 사건’이 아니라 ‘간첩 혐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간첩 혐의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은 유감이지만, 사건의 본질은 간첩 행위”라고 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1일 내부 회의에서 이 사건을 ‘위장 탈북 간첩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역시 ‘조작’ 대신 ‘간첩’을 내세웠다. 그런 말에는, 증거조작은 간첩을 잡으려던 실무자의 과잉의욕이 빚은 사소한 실수 또는 개인적 일탈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듯하다. 당연히 간첩을 잡고 기소한 국정원과 검찰은 큰 잘못이 없는 것이 된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그런 내용으로 국민을 설득할 발표 문안을 짜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발표 뒤에는 다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적어도 검찰은 그러지 못할 듯하다. 더 수사할 게 없어서 수사를 멈추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안다. 공소장을 보면 ‘윗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증거조작을 지시하고 돈을 집행한 결재권자가 분명히 있고, 사안의 성격과 조직의 생리상 누가 관여하고 재가했는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아직껏 남재준 국정원장은커녕, 지휘계선의 차장-국장-단장 그 누구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 검찰총장이든 수사검사든 ‘직’을 걸고 덤비면 진실을 캘 방법이 있다는 지적은 검찰 안에서도 나온다. 혐의와 수사 대상이 뻔히 보이는데도 거대한 힘에 겁먹고 지레 수사를 포기하는 꼴이 된다면 그 뒤에는 아무도 검찰을 믿지 못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신뢰나 힘조차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나아가 ‘간첩 잡는 일에 사소한 위반쯤이야…’라는 종주먹에까지 검찰이 동조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면, 검찰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증거조작은 적법 절차를 생명으로 하는 국가 형사사법체계를 공격하고 훼손한 중대 범죄다. 검찰이 이를 적당히 눈감아준다면 사법체계의 담당자가 아니라 권력의 정글에서 눈치나 보는 존재로 추락하게 된다. 대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국정원도 큰일이다. 대선개입과 증거조작 등의 사건이 잇따르면서, 국정원은 어느새 나라의 우환덩어리가 돼버렸다. 간첩을 잡는다면서 증거를 조작하고, 혹은 국정원 변명대로라면 위조문서에 까맣게 속았다면 정보기관으로서도 공안수사기관으로서도 할 말이 없게 된다. 국가의 축인 선거와 사법체계를 공격한 데 이어 조직 보전을 위해 국가기밀이나 수사비밀까지 흘리고 다녔으니, 공공의 안정을 지키는 조직이라고 말할 수도 없게 됐다. 그런 병을 고칠 기회가 이번 사건이었는데, 결국 개복 수술도 않은 채 암덩어리를 덮은 꼴이 됐다. 몇 달 뒤 특검을 한다고 해서 제대로 바로잡기도 쉽지 않을 성싶다. 그 책임 역시 누가 질 것인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여현호 논설위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