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
마케팅에 대해서라면 각자 나름의 정의가 있겠지만 나는 마케팅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이가 하는 걸 따라 하는 거 말고 나만 할 수 있는 것, 혹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면 다른 이들이 했던 걸 어떻게 하면 내 방식대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 이것은 조직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JOH의 조수용 대표가 잘 지적했듯 “책이나 저자가 브랜드가 될 수는 있어도 출판사가 하나의 브랜드로 대중에게 인식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출판사를 그저 “창작물 유통 플랫폼 정도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가 만든 잡지 ‘B’에 흥미로운 일화가 있어 소개해 볼까 한다.
펭귄(Penguin Books)은 앨런 레인 대표가 1935년에 설립한 영국의 출판사다. 당시는 읽을거리가 많지 않은 시기였던데다 책은 대개 ‘먹물’들이 전유했다. 앨런은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의 도서를 만들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때 그가 떠올린 것이 바로 페이퍼백이라 불리는 문고본이다. “책의 본질을 소장하는 것이 아닌 읽는 것”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는 가격과 판형이 일정하고, 그 시절에 문고본으로 통용되던 “싸구려 삼류 소설”이 아닌 양질의 내용을 담은 도서를 기획한다. 페이퍼백에 대한 그의 철학은 다음과 같다. “쉽고 편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할 것. 다양한 독서 취향을 맞추되 언제나 양질의 작품일 것.”
하지만 시장은 만만치 않았다. 출판계에서는 그의 시도를 무모하게 여겼고 서점에서는 펭귄의 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오늘 한국에서 페이퍼백이 등한시되는 것처럼 1935년의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앨런 레인 대표는 기존의 사고를 바꿔 서점 대신 접근성이 더 좋은 잡화점에 책을 진열하기로 결정한다. 덕분에 첫 문고판은 며칠 만에 동이 났다.
의외로 많은 출판사들이 우리는 인문서를 내니까, 우리는 철학책을 만드니까, 그렇기 때문에 ‘점잖은’ 마케팅을 해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이 있는 듯하다. “특색 있는 마케팅을 하고 싶긴 한데 그래도 너무 튀면 곤란하니까”라는 것이 내가 만난 마케팅 담당자들의 고민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쿠폰이나 마일리지를 활용한 무난하고도 변별력이 없는 마케팅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그게 나쁘다기보다 굳이 도서정가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와 같은 마케팅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는 다들 인지하고 있으리라 본다.
이런 말은 조심스러운데 일단 뭐든 시도해 보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앞서 예를 들기도 했지만 펭귄이 처음 저가의 페이퍼백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많은 서점들은 “(새로운 포맷의 책을) 쓰레기통에 쌓아두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어느 시대든 색다른 시도에 대해서는 반감이 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발상을 전환하여 서점 대신 잡화점에 책을 진열했고, 이 일을 계기로 펭귄이라는 출판 브랜드를 구축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제껏 책을 파는 일이 어렵지 않았던 시절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해도, 앞으로 내내 어렵다 해도, 편법에 눈 돌리지 말고,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독자에게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이니 당신의 마음에도 쏙 들 겁니다. 그러니까 사주세요”라고 얘기해야 한다. 그 책에 꼭 알맞은 마케팅이라는 형태로. 약간의 활력을 담아. 그러한 노력이 조금씩 수반될 때 비로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별 독서실태 따위의 통계나 출판이 문화의 근간이라는 업계의 주장도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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