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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5년 속았다는 그분은 ‘어학 다중인격’인가요?

등록 2014-04-18 20:31

친절한 기자들
친절하기 어려운 계절입니다. 친절한 말 주고받기 어려운 일이 서해 앞바다에서 벌어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친절은 죄다 아직 살아있을지 모를 아이들에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조금 더 안 친절했으면 이런 사건 없었을지 모릅니다. 선장이 승조원들에게 불친절하게 긴급상황 대처법을 가르쳤다면. 선장이 승조원들에게 불친절하게 화물 결박 원칙대로 하라고 요구했다면. 그래서 ‘<이방인> 논쟁’에 불친절한 말 보탭니다. 지금 벌어지는 건강한 논쟁의 침몰 사태 늦추는 것 도우려고요. 독자들이 용서하리라 생각합니다.

상황 정리합니다. 지난달 27일 새움출판사 이대식 대표가 ‘이정서’라는 필명으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번역합니다. ‘불문학의 권위자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숱한 오역을 저질렀고, 이 때문에 카뮈의 <이방인>이 재미없는 소설로 읽혀왔다’고 주장합니다. 한걸음 더 나갑니다. ‘문학 권력논쟁’입니다. 도발적 마케팅 합니다. 책 띠지에 “25년을 속아”왔다고 주장합니다. 이대식 대표는 책에서 “벌거숭이 임금님” 비유법도 사용합니다. 누가 속여왔고 누가 임금님이라는 말일지 궁금합니다.

<한겨레>에 전자우편으로 김화영 교수가 오역을 저지른 이유의 하나로 “스승인 이휘영 교수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일인지라 우리 학계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합니다. 본인이 직접 만든 이 논쟁 구도 속에서, 이 대표는 ‘권위에 맞서 용기있게 진실을 외치는 약자’입니다. 논쟁이 사그라지지 않자 <한겨레> 토요판(2014년 4월12일치 14면 참조) 등 몇몇 언론이 논쟁을 다룹니다. 이대식 대표가 번역가 이정서인데 이 대표는 프랑스어를 잘 못하며 영어본을 중역한 뒤 프랑스어에 능통한 편집자에게 대조 작업을 시켰다는 의혹을 서평가 ‘로쟈’가 제기합니다. 이대식 대표는 4월16일 다시 글을 올려 반박합니다. 프랑스어를 잘하는 편집자를 고용해 ‘연재가 끝나가던 시점에 <이방인>의 대조작업을 시켰다’고 인정했습니다.

쟁점 정리합니다. 첫째, 이 대표는 본인이 번역자임을 숨긴 게 잘못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인정합니다. 발행인이 번역자·저자 겸할 수 있다는 견해가 출판계에 많습니다. 전례도 있습니다.

둘째, 결정적으로 이 대표는 ‘선입관을 버리고 <이방인>이 제대로 번역되었는지 아닌지’만 보자고 주장합니다. 건강한 번역 논쟁의 가능성을 죽여 오로지 마케팅에 활용한 것은 이 대표 본인의 태도와 어법입니다. ‘내 번역이 더 낫다’고 주장하고 건강한 번역 비평을 이끌어냈으면 그만입니다. ‘약자/강자’ ‘문학권력/권력 저항자’ 구도를 덮어씌웠습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김 교수나 고대 불문학과가 왜 문학권력인지 <한겨레> 취재 과정에서 구체적 사례를 들지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기존 번역에 대한 반박 주장을 펼치다 무마당한 대학원생이나 젊은 번역자의 사례 하나쯤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팩트’ 없이 구조적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용기일까요. 기자인 제가 볼 땐 만용입니다.

출판인의 직업 윤리가 또 하나의 쟁점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느낀 이 대표의 어법(그는 전자우편을 선호했습니다)은 독특했습니다. 글을 직업 삼은 분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팩트’를 얼버무렸습니다. ‘불어보다 영어문장 보는 게 더 편했던 나’라고 본인 스스로 연재글에 씁니다. 매슈 워드 영역본을 참고했다고 적시했는데 <한겨레>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카뮈의 원본만 보면 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 뒤 인터뷰를 왜곡했다고 비난합니다. 뒤늦게 편집자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도움’을 받았고 ‘대조작업’을 시켰다는데 어떤 작업인지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지난 16일 블로그에는 본인의 프랑스어 실력을 내비치며 프랑스어 문장 번역 경쟁을 제안합니다. ‘김화영 교수에게 다시 기회를 드린다’는 취지입니다. 현란합니다. ‘어학 다중인격’일까요? 좋은 번역을 찾기 위해 논쟁이 필요한데, 논쟁의 주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인 것입니다. 이 대표 본인이 부른 이런 문제로 본인 번역본이 가진 설득력을 갉아먹는 것이 아닌가 느꼈습니다. ‘혹세무민’ ‘너저분한’ 등 지극히 감정적인 단어로 극단적으로 진영을 가르는 어법도 대화를 가로막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친절하지 않은 상황이 출판계와 번역계에 준 딱 하나의 친절한 점은, 독자들이 ‘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오래된 진리를 뒤늦게 피부로 알게 됐다는 점일 겁니다. 이미 읽었던 외국 고전의 여러 버전을 즐기면 어떨까요. 단 <이방인> 말고 말입니다.

고나무 토요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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