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저자
인간이 다른 인간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 중에서 2009년 5월 소설가 김연수가 <한겨레>에 기고한 ‘그날 하늘에는, 검은 달이 떠 있었다’보다 슬픈 글을 나는 알지 못한다. “죽지만 않았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젠 다 틀렸다. 다시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지만, 그 두 세계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대통령 노무현의 죽음을 추모하는 그의 글을 다시 읽다가 많은 것들이 떠올라 나는 또 울었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은 자연현상이다. 겨울이면 눈이 오고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것처럼 인간의 윤리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인간이 살고 있는 곳은 어떤 이름을 붙이든지 상관없이 자연의 일부다. 우리의 삶 역시 자연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문명은 자연과 다르다. 문명 속에는 늘 윤리적 개입이 이루어진다. 윤리적 개입의 궁극적 목표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 ‘윤리적 인과관계’ 즉 ‘정의’의 실현이다. 하지만 윤리적 인과관계를 실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윤리적 인과관계를 무시하는 자연법칙에 의해 끊임없이 좌절된다.
착한 사람이 벌을 받고 나쁜 사람이 복을 받는 자연현상은 인간을 좌절시킨다. 그리고 그 좌절의 정점은 죽음이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를 좌절시킨다. 이 사건의 희생자들, 특히 어린 학생들은 자신들의 불행에 책임이 없다. 그들은 누군가의 잘못과 오판과 타락과 실수에 의해 죽었다. 윤리적 인과관계의 실패다. 죽지만 않았어도 어떻게든 바로잡아 보겠는데 이젠 다 틀렸다. 억울하지만 돌이킬 수가 없다. 비통한 눈물이 온 나라를 적신다.
곧 일벌백계가 있을 것이다. 관련자들이 엄격하게 처벌되고 책임자들은 냉혹하게 경질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을 중형에 처하고 청해진해운의 비리와 잘못을 밝힌다 해도 아이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고 비슷한 일은 또 일어날 것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끊어졌지만 세월호가 또 침몰하는 이유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 윤리적 인과관계가 실현될 것이란 신념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정의에 대한 신념을 갖지 않는 한 그런 신념은 작동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선실에 머무르게 한 후 먼저 배를 탈출한 선장의 행동은 어떤 윤리적 관점으로도 합리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간첩사건을 수사하는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하고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달며 선거에 개입하는 일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합리화된다. 이념과 진영이 다르다는 이유로 최고 영향력을 자랑하는 언론들이 제대로 된 사실 파악도 처벌 주장도 하지 않는다. 결국 잘못이 발각될 가능성은 작고 설령 발각되어도 처벌되지 않는다. 처벌된다고 해도 곧 다른 자리에서 더 많은 권력을 누린다. 명확한 정치적 범죄에 대한 혐오와 공분이 결여되고 잘못한 권력도 바뀌지 않는 사회가 윤리적 인과관계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을 리 없다.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은 일본인들에게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다. 음습한 패배감과 무력감이 일본열도에 만연했다. 무엇이든 바꿔야 한다는 절박감이 아베 정권을 탄생시켰다. 아베 정권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리에게 많은 아픔과 고통을 주고 있는 세월호 사건도 어떤 식으로든 한국을 변화시킬 것이다. 정치적 희생양을 찾는 일벌백계는 20년 전에도 썼던 방법이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속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적 영역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사회적 영역에서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의 정상화’다.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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