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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데스티네이션 / 김지석

등록 2014-05-05 18:52

미국 영화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는 죽음이 주인공이다. 5편까지 나온 이 영화에서, 죽음은 일정한 계획 아래 차근차근 자신의 뜻을 관철한다. 계획을 알아채는 사람이 있더라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죽음은 우연의 형태로 다가온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마네킹 인형 팔들을 가진 할아버지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다. 이 여성은 휴대전화를 받다가 마네킹의 갈고리가 머리카락에 걸리자 겁을 먹고 엘리베이터에서 나가려 한다. 그러자 이제까지 잘 작동되지 않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갑자기 닫히고 이 여성은 문에 머리가 끼여 숨지게 된다. 결과는 비참하지만 하나하나의 과정은 모두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세월호 사건은 우연의 형태를 띤 필연을 보여주는 점에서 데스티네이션과 닮았다. 물론 데스티네이션에서는 죽음이라는 초자연적 실체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지만 세월호 사건에서는 사람이 그 역할을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세월호 사건에서 위기는 가능성의 형태로 진화하다가 한꺼번에 폭발한다.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배의 균형을 잡는 평형수 빼기, 배의 무리한 개조, 상습 과적, 선장·선원 등의 열악한 고용조건, 승객안전조처 무시 등으로 위기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고 갔다. 이 회사의 배들은 1990년대 이후 10여차례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겪었지만 회사 쪽은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위기 가능성의 진화’는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위기의 진화’로 발전한다. 그릇된 대처와 무능한 정부 등 인간적 요인은 여기서도 결정적 구실을 한다. 위기 가능성이 어떻게 현실화하고 위기가 어떻게 진화하지는 2007~2008년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 세월호 침몰은 위기 가능성이 임계점에 이른 상태에서 작은 우연이 언제든 빠져들 수 있는 목적지(데스티네이션)였고, 이와 연관된 참사 또한 마찬가지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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