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
“어떻게 출판을 시작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받는다. 어느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었을 때 나는 아홉해 전 겨울을 떠올렸다. 이런 지면에까지 광고를 할 참이냐는 혐의를 받을 우려가 있으니 제목을 말하진 않겠지만, 나는 북스피어에서 펴낸 첫 책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를 차렸다. 켈트신화에 관한 판타지 소설이다. 번역이 끝나고도 만드는 데만 꼬박 일년이 걸렸고 제작비도 1억원 가까이 들었다. 편집도 제작도 뭐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어떻게 팔 것인가’였다. 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실로 난감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좋은 책이니까. 좋은 책은 필시 사람들이 알아봐 줄 테니까. 떠올리니 아득하다.
이후로 나는 새삼스러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좋은 책이라고 반드시 사람들이 알아봐 주진 않는다는 것. 우수한 콘텐츠가 판매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 베스트셀러가 독자들의 선택만으로 선정되진 않는다는 것. 싸잡아 얘기하려는 건 아니지만 많은 출판사들이 책을 팔기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부끄럽게도 거기에는 내가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도 포함되어 있다. 나 역시 한권이라도 더 팔아먹기 위해 불법에 가까운 할인을 감행했다.
지난달 29일치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11월 중순부터 책값의 무차별적인 에누리가 법적으로 금지돼 정가의 15% 이내로 할인이 제한된다”는 내용의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한다. 지금까지처럼 ‘반값 할인’이나 ‘과도한 마일리지 지급’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인문서를 실용서처럼 꾸며서 출간하자마자 할인하는 일도 힘들어진다. 기사는 “환영과 아쉬움의 목소리가 엇갈려 터져나오지만 대체로 진전된 상황에 대해 거는 기대감이 높다”며 출판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예상대로 많은 독자들이 개정된 도서정가제에 반감을 드러냈다. “그나마 할인이라도 하니까 샀는데 더 이상 사지 않겠다”, “앞으로는 헌책방에서만 사겠다”는 의견이 많았고, “악법이니 불매운동을 하겠다”는 글도 눈에 띈다.
이것은 좀 단순하게 말하면 ‘같은 책을 두고 정가를 5000원으로 매겨서 판매할 때와, 정가를 1만원으로 매겼다가 50%를 할인해서 판매할 때 과연 어떤 쪽이 잘 팔릴까’ 하는 문제와 같다.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후자가 잘 팔린다. 이 때문에 많은 출판사들이 눈 가리고 아웅 하듯 할인 경쟁에 뛰어들었고 그것은 마치 악성종양과도 같은 형태로 조금씩 출판계 내부를 잠식해 갔다. 다들 독자가 줄어드는 건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마구 책을 찍어냈다. 팔리지 않은 책들이 서서히 악성 재고로 변하는 걸 보며 출판사들은 생각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어차피 할인해서 팔면 된다고. 마케팅은 얼마나 건설적이고 차별적인가보다, 얼마나 싸게 팔 것인가에 집중됐다. 할인이 일부 서점에만 적용되자 시장은 불균형하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바로잡아 보자는 것이 개정된 법의 취지다.
일말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개정된 도서정가제에 찬성한다. 이로 인해 독자들이 등을 돌리고 떠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해보자면, 할인으로 인해 엉뚱한 책이 팔리고 베스트셀러가 되느니 “그나마 할인이라도 하니까 샀는데 더 이상 사지 않겠다”는 독자는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그럼으로써 출판계 전체로 봤을 때는 판매가 줄더라도, 차제에 필요한 책이 필요한 만큼만 팔리는 풍토가 만들어지길, 그러한 풍토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