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슈투트가르트 검찰청의 랄프 디트리히(37) 검사는 최근 한스 립시스(94)라는 치매 노인을 살인 방조 혐의로 기소했다. 그가 나치 치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요리사로 일할 때 유대인 학살을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도 가만히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이 사건을 다룬 기획기사에서 독일 국민의 여론을 신기하게 여겼다. 범죄에 직접 가담하지도 않은, 더구나 거동조차 불편한 노인한테 70여년 전의 일로 손자뻘 되는 검사가 처벌하겠다는데 당연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범죄에 힘을 보탰거나 곁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독일 국민의 생각은 뿌리가 깊다. 2차 세계대전 뒤 나치 전범을 단죄하는 국제재판이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릴 무렵 실존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한 대학에서 ‘우리에게 죄가 있는가’(부제: 독일인의 자기비판)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그는 민주국가에서 국민의 범죄를 크게 4가지로 나눠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일반적인 ‘형사적 죄’로, 어느 국가에서든 사법적 절차를 통해 형벌이 뒤따른다.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는 ‘형이상학적 죄’로 분류된다. 야스퍼스는 독일 국민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으로는 ‘도덕적 죄’와 ‘정치적 죄’를 꼽았다.
도덕적 죄는, 가령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않았다거나 반대해야 할 때 반대하지 않았을 경우 성립된다. 패악과 불의에 저항하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적용된다. 야스퍼스는 나치에 저항한 이들에게는 정치적 죄를 물었다. “반대의 목소리를 냈더라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또는 그 행동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정치적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 뒤 온 국민의 마음속에 묵직한 돌덩이가 얹혀 있는 듯하다. 딱히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죄책감이다. 죗값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가 이제부터 고민이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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