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 얼마 안 된 2008년 11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정경대학을 방문해 경제학 교수들에게 물었다. 경제학자들이 많은데 왜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느냐고. 여왕의 이례적인 질문에 경제학자들은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다. ‘사회과학의 여왕’이라고 자부해온 경제학 교수들이 망신을 당한 셈이다.
그 후 경제학계 한편에서 원인을 짚어보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대체로 케인스학파가 시카고학파를 비판하는 형태였다. 정부 개입을 지지하는 쪽에서 시장만능주의를 지향하는 쪽을 겨눈 것이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의 패권구조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케인스학파 영향이 커졌으나, 이는 주류 내부의 역학관계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기득권이 온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여러 나라 학생들이 이런 현실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경제학의 다원성(실현)을 위한 국제 학생들의 발의’란 모임을 만들어 경제학 교육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공개서한에서 “위기에 처한 것은 세계경제만이 아니다. 경제학 교육도 위기에 처했다”며, 교과과정이 편중돼 지적 다양성의 결핍을 빚고 있다고 밝혔다. 신고전학파 일변도 교육의 폐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대학에서 고전학파와 제도학파, 생태주의, 여성주의, 마르크스주의, 오스트리아학파 등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일 현재 이 모임에는 30개국 학생단체들이 가입했다.
1980년대 후반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교수를 선발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사회민주화 흐름 속에서 대학원생들의 강력한 요구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가 몇년 전 정년을 맞은 뒤에는 그의 전공을 이어갈 후임자를 뽑지 않고 있다. 교과과정의 다양화가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대학생들의 움직임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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