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김덕영의 <환원근대>는 박정희 집권기에 굳어진 한국 근대화의 성격을 ‘환원근대’라고 명명한다. 민주·인권·자율·개성 같은 근대성의 모든 가치를 경제적 가치 하나에 종속시키는 것이 환원근대의 핵심 특징이다. 이 환원근대의 틀을 결정한 박정희가 ‘강력한 국가를 이끈 강력한 지도자였다’는 데는 박정희를 긍정하든 부정하든 대체로 동의하는데, 김덕영은 이런 평가에 단호히 반대한다. 박정희는 허약한 지도자였으며, 그가 이끈 국가는 허약한 국가였다는 것이다.
김덕영이 말하는 강력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고, 갈등을 조정하여 사회통합을 이룸으로써 권위와 정당성을 유지하는 국가’다. 그러므로 강력한 국가라면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비판을 허용하면서 그 속에서 국민의 동의를 확보해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을 구현해야 한다. 나라를 이렇게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강력한 지도자다. 박정희 집권 18년은 자유도 인권도 사회통합도 없었다. 박정희는 민주적으로 확립된 권위가 아닌 폭력기구에 의존해 국가를 통치했다. 강퍅한 지도자가 강한 지도자인 것은 아니다. 더구나 10월유신 이후 박정희 체제는 ‘초헌법적 1인 영구집권 체제’로 떨어졌다. 김덕영은 독일 역사학자 한스 몸젠의 나치 국가 분석에 기대 유신체제를 ‘반근대적 유사국가’라고 부른다. 국민의 주권을 박탈해 1인에게 몰아준 유신체제는 나치 체제처럼 국가의 본질적 성격을 상실한 국가였다는 것이다. 이 유사국가의 지도자야말로 허약한 지도자다.
박정희 체제의 신자유주의적 재림이라 할 박근혜 정권도 근본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선거부정으로 탄생한 이 정권은 태생적 허약성 탓에 언론자유를 감당하지 못하고 공론장을 통제한다. 또 권력기구를 동원해 비판세력의 목을 죈다.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허약한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박근혜와 박정희는 분명 한 핏줄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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