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문제가 <한국방송>(KBS) 사장에 대한 사퇴 요구로 이어지면서 한국방송의 양대 노조가 모두 파업에 참가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보도국장의 부적절한 언행과 정치적 독립성을 의심케 하는 사장의 행동으로부터 촉발된 것이지만, 보다 근저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리학에 주로 사용되는 ‘임계질량’(critical mass)이란 용어가 있다. 이는 어떤 물질이 새로운 물질 상태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자극의 양을 의미한다. 임계질량에 도달하지 못할 때는 물질은 평온을 유지하지만, 이를 넘어서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상태로 전이가 일어난다. 핵분열이나 수증기의 형성이 그 예이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방송 파업을 촉발한 건 분명하지만, 그 이전에 축적된 질량이 있었다는 점이 좀더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방송 파업은 세월호 참사로 발생한 우발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그 이전부터 축적된 보도 공정성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번 파업은 한국방송 내부에 직능과 직위 사이 의견상충이 거의 없고 경제적 권리의 상충이 아닌 가치와 그것의 수행 방법의 상충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공정보도와 같은 규범적 가치체계를 둘러싼 파업은 그동안 수차례 있어 왔다. 그때마다 파업의 정당성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1월17일, <문화방송>(MBC) 노동조합의 2012년 파업에 의한 해고와 징계가 무효라는 1심 판결은 이러한 논쟁에 중요한 방점을 찍었다. 판결문을 보면, 공정방송 의무는 방송법 등에 의해 방송사의 노사 양쪽에서 요구되는 의무이자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이다.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그 준수 여부는 노동조합법 제30조에 따라 사용자의 의무 사항이라 판결했다.
한국방송 사태의 핵심 의제인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은 그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은 방송법이 정하는 책무인 공정성을 달성하는 기초이다. 이와 관련해 현재 한국방송 이사회의 구성 방식과 의결 방식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현재 한국방송 이사회는 7명의 여당 추천 인사와 4명의 야당 추천 인사로 구성되며, 이 이사회가 사장 후보 중 한 사람을 선정해 대통령에게 임명제청을 한다. 정치적 양극화가 사회 양극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여야의 지분제는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었다. 이사들의 전문성과 그에 기초한 토론은 없어지고 ‘지분투표’가 일어나고 있다. 저신뢰 사회인 한국에서 국회를 대체할 정당성 있는 사회단체도 마땅치 않다는 점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일부에서 이사진 수를 늘리자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 공정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 점에서 현재와 같이 정치적 승자가 방송 운영의 승자가 되는 승자독식 구조에서 방송사 사장 임명과 같은 주요 사안의 경우 3분의 2 또는 5분의 4 동의를 기준으로 결정하는 ‘특별다수제’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사결정구조의 문제를 회사 내 정관의 문제로 좁게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은 내적 자율규제, 타당한 공적 규제, 수용자 집단에 의한 사회적 규제가 건강하게 긴장을 형성할 때 가능하다. 이러한 건강한 긴장은 운영의 투명성에서부터 출발한다. 인터넷포털 구글은 매년 국가 단위의 ‘투명성 보고서’를 발간한다. 이 보고서에는 정부가 삭제 요청한 게시물이나 검색 결과가 모두 기록되고 분석되고 있다.
한국방송도 안팎의 압력에 대해 회사 내부의 다양한 직분의 사람들이 그 내용을 기록하여 분석하는 ‘투명성 보고서’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보고서는 공영방송 정책을 둘러싼 다양한 참여자들끼리 서로 건강하게 긴장관계를 유지하여 그 긴장의 팽팽함으로 독립성의 공간을 확보하는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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