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모피아라는 말이 유행했을 때, 금융자본주의의 심장에서 혈액을 쥐고 흔드는 관료들이니, 마피아처럼 법을 무시하고 이권을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권력을 쥐었겠거니 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무기력한 대처의 원인 해경이 해양산업 권력을 장악한 ‘해피아’임이 회자되었다. 나아가 이제 한국 관료사회가 시민사회의 이익이라는 공공성보다 관료사회의 이익만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조직, 즉 ‘관피아’에 불과하다는 인식에 대통령마저 동의했다.
관료사회와 마피아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단어다. 사적 이익보다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 직무 때문에, 공무원이라는 직책과 권력을 넘겨받은 이들의 사회에서의 위치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 공공성을 무시하는 마피아 따위의 조직폭력배의 극단에 놓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상징적으로 그리고 치밀하게 드러난 한국 사회의 기저에는 관료를 조폭보다 신뢰할 수 없다는, 술자리에서는 다들 알게 모르게 떠들어대면서도 설마설마했던 소문의 실체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들은 관료조폭이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오래전부터 현장의 연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과기부 관료들을 위해 정책이 수립되고, 연구비 심사는 연구의 건강성이 아니라 과학자가 얼마나 정치를 잘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는 이야기가 횡행했다. 황우석 사태는 박정희 시절부터 온갖 관료주의의 그늘에 과학기술정책을 종속시키며 생긴 적폐가 폭발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 적폐의 퇴적물은 너무나 많아서 황우석 사태로는 제거되지도 않은 모양이다.
한국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와, 세종시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던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플랜이 맞아떨어져 과학비즈니스벨트사업 혹은 기초과학연구원(IBS) 사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곳에 미래부의 낙하산 인사들이 공수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암암리에 전해지는 말로는, 기초과학연구원이 빼앗아간 예산 때문에 중견 과학자들의 연구비가 고갈되었고, 이를 의식한 낙하산 관료들이 1~2년도 안 된 단장들에게 연구 성과를 압박하는 모양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기초과학연구원 오세정 초대 원장은 중도사퇴하고 서울대 총장 선거에 후보로 등록했다. 이사장은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주말에, 낙하산 관료는 전용차를 타고 예식장에 오간다는 내부의 폭로부터, 명절에 이들 낙하산 관료들에게 선물을 하지 않으면 재계약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루머까지 오간다고 한다.
10년 이내에 노벨상을 타겠다는 유치한 목적으로 시작한 기초과학연구원이다. 노벨상이 그런 식으로 탈 수 없는 것임은 이제 모두가 다 아는 상식이지만, 적어도 기초과학이라는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책임질 기관으로 탄생한 기관이다. 이런 성지에 관료조폭 몇몇이 뛰어들어 순진한 과학기술자들에게 아부와 처세 따위의 연구와는 하등 상관도 없는 굴종을 강요하고 있다. 과학기술계가 또다른 세월호 참사에 노출되어 있다. 이번엔 아마도 황우석 사태와는 차원이 다른 참사가 될지 모른다. 중이온 가속기 사업은 황우석의 연구비와는 규모가 다른 사업이다.
국회는 장장 1년 동안 과학기술 관련 법안을 하나도 통과시키지 않고 있고, 기초과학연구원 초대 원장이었던 이는 서울대 총장을 더 선호하고, 과학에 대해 무지한 미래부 낙하산 관료조폭들이 기초과학연구원을 장악하고 갓 부임한 단장들에게 성과 압박을 하고 있다. 평형수는 이미 비워졌고, 배가 지탱할 수 없는 화물이 적재중이다. 이제 누군가 배를 버리라고 명령하는 일만 남았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