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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전복 삼계탕 / 김의겸

등록 2014-06-22 18:19

날씨가 더워지면서 삼계탕을 찾는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삼계탕 하면 왠지 선조가 오래전부터 즐겼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근대가 만들어낸 음식이다.(<식탁 위의 한국사>)

조선시대 닭고기는 값이 비쌌다. 차라리 사냥해서 잡는 꿩고기가 더 쌌다. 닭이 흔해지기 시작한 건 1920년대 일제가 양계를 부업으로 적극 권장하면서부터다. 이때 나온 닭요리는 그저 닭국, 백숙으로 불렸다. 닭국에 인삼가루 한 숟가락을 넣는 경우가 있었지만 다른 이름이 붙지는 않았다.

6·25 뒤 인삼가루를 넣은 닭국에 계삼탕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기 시작했다. 인삼의 효능을 일반인도 맛볼 수 있게 하겠다는 판매 전략이다. 1960년대가 되면 아예 계와 삼의 위치가 바뀌어 삼계탕이 보편화한다. 닭보다 삼이 전면으로 등장한 데는 1965년 허가제였던 인삼 재배가 자율화되면서 생산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또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썩기 쉬운 수삼을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된 덕도 크다.

요즘은 삼계탕에 전복을 많이 넣는다. 이름도 전복이 맨 앞에 나가 전복 삼계탕이다. 전복은 예부터 귀한 음식 재료로 취급되었고, 한약재로도 썼다. 운송·보관이 어려워 주로 말려서 포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말린 전복의 공출이 극심해서 전복이 제법 많이 나오는 제주도에서도 함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

전복이 대중화된 건 10년 전 가두리 양식이 보급되면서다. 양식 전복의 80%는 완도의 바다에서 난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전복이 먹는 미역과 다시마가 완도에서 많이 난다는 점이 크다.

닭요리에 귀한 인삼과 전복이 들어가니 세상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기본이 되는 닭은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길러지고 있다. 인삼과 전복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의 됨됨이는 뒷전이고 스펙으로 승부를 보려 하는 요즘 세태를 닮은 듯해 뒷맛이 개운치 않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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