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주현 정치부 기자
사회학자 신진욱 교수는 ‘썸타기’의 요체는 ‘불확실성’이라고 했다. 남녀 사이 섬싱(something)과 타다(동사)가 합쳐진 썸타기는 앞으로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쓰는 말이다. 소유와 정기고도 <썸>이라는 인기곡에서 “생각할수록 너의 진심이 더 궁금해지는걸”, “피곤하게 힘 빼지 말고 어서 말해줘”라고 노래했다.
여야 원내대표인 이완구, 박영선은 지금까지는 썸타기에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첫 만남 때 먼저 회담장에 도착해 박 원내대표를 마중 나갔고, ‘레이디 퍼스트’라며 안쪽에 앉도록 했다. 박 원내대표 또한 “이 원내대표가 회색을 좋아한다기에 회색 옷을 입고 나왔다”며 애교 있게 답했다.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의 조사 대상을 놓고 옥신각신할 때도 이들은 사이좋게 팥빙수를 먹으며 공개적인 썸타기를 벌였다. 이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자꾸 ‘새민련’으로 부르자 “‘이완구’라고 불러주세요 하는데 ‘이왕구’라고 부르면 안 되지 않느냐”고 타이르기도 했다. 위기도 있었다. 지난달 비공개로 원 구성 협상을 벌이던 때였다. 회담장 밖에까지 고성이 들렸다. “나도 할 만큼 했어. 왜 이래!”(이완구), “지금까지 양보하신 게 뭐가 있어요!”(박영선) 사실 두 사람은 ‘버럭’이라면 당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이 썸타기를 지속하며 인내하는 까닭은 성공적인 국회 운영으로써 실리와 명예를 취하고 싶어서다. 앞으로 더 ‘높은 자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이 원내대표는 ‘통 큰 리더십’을, 내심 차기 정치 지도자를 꿈꾸는 박 원내대표는 ‘유능하고도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이 원내대표가 모든 것을 다 양보할 듯 나오고, 박 원내대표가 이를 알면서도 참을 인(忍) 자를 새기는 이유다.
그러나 이들의 썸타기엔 ‘청와대’라는 구조적인 난제가 있다. 이 원내대표는 2009년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에 맞서 세종시 원안을 고수할 때 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신뢰’를 내세우며 충남도지사직을 내던졌다.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이후 이명박 정부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 안에선 그보다 훨씬 대통령과 가까운 친박들이 있다는 게 통상적인 시각이다. 박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를 수 있다는 윤상현 사무총장,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 전략을 맡았던 김재원 원내수석이다. 이 원내대표가 아무리 통 크게 나와도 실제로 여야 원내수석끼리 구체적인 실무 협상에 들어가면 일이 꼬이는 것엔 그런 배경이 깔려 있는 듯하다.
최근 이 원내대표가 박 원내대표와의 썸타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 나섰다.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진핑 국가주석 환영 만찬에서다. 이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야당과의 소통을 강조했고, 결국 이번주에 이 원내대표와 박 원내대표는 함께 박 대통령을 만나게 됐다. 이 원내대표가 ‘썸타기 파트너’를 지렛대 삼아 청와대의 빗장을 연 것이다. 최근 국무총리 인사 실패로 위기에 놓인 청와대로서도 물리치기 어려운 카드였을 것이다.
마침 이번주부터 여야는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뜨거운 이슈들을 다루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썸타기의 진수를 보여줘야 할 때다. 특히 이 원내대표가 야당과 청와대 사이에서 보이는 줄타기 실력에 따라 썸타기의 불확실성은 판가름날 것이다. 썸타기는 자칫하면 ‘쌈’으로 변한다.
이유주현 정치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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