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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아베에 분노하는 일본 작가들 / 김정훈

등록 2014-07-09 18:22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일문학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일문학
현실참여 문필 활동과 행동하는 실천적 지성으로 알려진 오에 겐자부로가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관한 각의 결정 소식에 분노해 지난 1일 도쿄 시내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밀보호법안 등으로 사사건건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고, 역사 왜곡을 일삼는 등 아베 정부의 우경화 정책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 1000명 위원회’를 대표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중립 입장을 포기하는 것으로 과거 전쟁의 많은 예가 집단적 자위권을 명목(명분)으로 정당화돼 왔다. 헌법 이념을 권력자에게서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가족사에서부터 인류 미래를 위한 우주시대의 원대한 이상, 전쟁 체험의 트라우마를 통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작품 경향에 이르기까지, 그의 문예적 철학은 평화정신과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로 점철돼 있다. “평화헌법과 민주주의가 자신의 지탱(목)인데, 큰 타격을 입은 기분”이라고 밝혔으며 “아베 신조 총리는 헌법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 이상한 인간이다. 집단적 자위권으로 인해 국내에 일어날 테러 (가능성) 등에 대한 상상력도 결핍돼 있다”고 아베 정권을 겨냥했다.

여기에서 필자는 자민당, 민주당 등의 정파적 이념을 떠나 아베 총리의 혈통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화제가 된 나나쓰다테 사건(1944년 5월 나나쓰다테 갱도 함몰 사고로 한국인 징용노동자 11명과 일본 노동자 11명이 생매장된 사건)의 주범도 아베의 외조부로 당시 군수차관이던 기시 노부스케였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증산’을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신봉하던 전쟁주의자. 그 유전자가 아베에게도 흐르고 있는 것이다.

국가주의를 경계하며 개인주의를 강조한 근대 일본의 대표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외조부로 둔 한도 마리코의 남편이자 작가인 한도 가즈토시는 일본 <지지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일본의 톱(Top)도 태평양전쟁의 비참함을 모르고 ‘일본은 우수했다’고 하는 영광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그러면 국가는 대국주의로 척척 나아간다. 다른 나라 싸움을 사서 끼어들 권리(집단적 자위권)를 갖고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서 국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고 보면 1세기 전인 1916년 독일 군국주의 전쟁에 대해 누구보다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작가가 다름 아닌 나쓰메 소세키였다. 그는 <점두록>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도 마찬가지로 단지 승리할 가망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무력을 사용해서는 주변이 피해를 입을 뿐이다. 문명을 파괴하는 것 외에 어떤 효과도 없다. 승리한 쪽은 승리한 뒤에 그 손해를 보상하는 것 이상의 공헌을 거대 문명에 대해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건만 어찌 일본이라고 다를까.

지난해 초 구로카와 소라는 소설가에 의해 나쓰메 소세키가 1909년 11월 초 <만주일일신문>에 게재한 감상기 ‘한만소감’이 공개돼 그의 국수주의적 발언의 실체가 드러났으나, 그의 정신에 ‘집단적 자위권’과 같은 내용을 용인할 리 없는 반골정신이 흐르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아베 정권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일까? 집단적 자위권 각의 결정이 헌법 9조와 상반된 것이기에, 한·일 시민들은 아베 정권이 다음 수순으로 헌법 9조 개헌에 돌입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나쓰메 소세키나 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한도 가즈토시와 같은,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일본 작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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