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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기대 / 이창곤

등록 2014-07-13 18:38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성장은 보수, 분배는 진보.” 성장은 보수가 잘하고, 분배는 진보가 잘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보자. 김대중 정부 5.3%, 노무현 정부 4.3%, 이명박 정부 2.9%, 박근혜 정부 3%(2013년 3분기). 사실이 이런데도 고정관념은 좀처럼 폐기되지 않는다. “성장 없으면 분배는 없다”, “분배는 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은? 1970년대 세계은행은 이미 분배를 통한 성장을 강조했으나 이 낡고 그릇된 구호를 여전히 신주처럼 떠받드는 이들도 많다. “성장전략이 있어야 집권할 수 있다”는 주장은 또 어떤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세워 집권했다. 우리 사회를 떠도는 뭇 성장담론은 대체로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평등과 연대 등 정작 소중히 해야 할 가치를 잘못 이해하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더 문제적이다.

지난주 국회에서 주목할 만한 한 토론회가 열려 참여했다. 문재인,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로 제목은 ‘중산층을 키우는 진보의 성장전략, 소득주도성장의 의미와 과제’다. 이날 토론회는 이른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국제적 논의를 살피고, 그것이 한국 경제의 대안적 성장모델이 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안을 위해선 어떤 고민이 필요한지 등을 짚는 자리였다.

우선 이 낯선 이름의 이론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단순 요약하면, 기업의 이윤이 아닌 노동자와 자영업자 등 서민·중산층의 가계소득을 높임으로써 경제성장을 꾀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신자유주의 성장 패러다임의 대안으로 근년 들어 제시한 ‘임금주도성장론’의 한국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여러 측면에서 관심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소득’(불평등과 그 개선)에 주목하고 있는 점이다. 기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살이의 토대는 소득이다. 소득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복지도 본디 사람살이에 필수적인 생활자원, 곧 의식주를 확보하기 위한 소득보장체계에서 비롯됐다. 장애인에게 치료서비스를 해주는 것과 별도로 장애수당을 지급하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에게 실업급여를 제공하는 것도 소득보장을 통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세 모녀 비극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이 기본적인 소득보장조차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이런 소득보장 및 증대가 경제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는 논리를 제공해준다. 한마디로 형평이 성장의 동력이란 것이다. 사회정의나 사회통합을 강조하며 분배 개선을 주창하는 기존 담론과는 결이 다르다.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인 것 같다. 그런 만큼 숱한 의구심과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앞으로 학계는 물론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가계부채 1000조원의 한국에서 ‘임금인상 등 소득증대→유효수요 창출→소비증가→ 경제성장’이란 시나리오가 과연 제대로 먹힐 것인가? 이 전략이 현실화하기 위해선 금융 부문의 규제가 불가결한데 어떻게 이를 달성할 것인가? 무엇보다 소득주도성장의 비전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정책 구성을 어떻게 짤 것인가? 이런 난제에도 솔직히 소득주도성장론은 그 자체만으로 반갑고 기대감 또한 크다. 무엇보다 수십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성장만능주의적 고정관념과 재원 중심의 사고를 깨뜨려줄 수 있는 이론이란 점에서 그렇다. 그릇된 성장담론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불행에 빠뜨렸고, 복지국가로의 항해를 더디게 만들었던 것인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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