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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브레턴우즈 체제 70돌 / 이경

등록 2014-07-15 18:29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7월, 44개국 대표 730여명이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의 한 호텔에 모였다. 국제연합(유엔) 통화·금융회의 참석자들인 이들은 1일부터 논의를 거듭한 끝에 22일 합의에 이르렀다. 전후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규율할 축의 하나인 브레턴우즈 체제가 마련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 창설에 합의하고,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가트)의 출범 토대를 닦았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은 고정환율제를 채택하되, 가입국 사정에 따라 조정할 여지를 두었다. 달러를 금과 태환할 수 있게도 했다. 여기에는 30년대 대공황 경험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주요 국가들이 금본위제를 버리면서 평가절하 경쟁이 이어져 세계경제에 큰 악재가 됐기 때문이다.

이 국제통화 체제는 잘 굴러가 전후 세계경제 번영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60년대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베트남전쟁으로 미국 국제수지가 큰 적자를 내고 독일·일본 등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달러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통화량 증발로 달러 실질가치가 떨어지자 일부 나라에서 금으로 바꿔달라는 요구가 나왔다. 이런 현실을 버거워하던 미국은 71년 전격적으로 금 태환 정지 선언(닉슨 쇼크)을 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막을 내린 것이다. 많은 나라는 이를 계기로 변동환율제로 이행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20세기 경제학의 주요 인물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인연이 깊다. 영국 정부를 대표한 케인스는 협상의 주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미국의 독주를 막을 구상을 내놓았다. 일종의 세계중앙은행을 설립하고 세계준비통화(방코르)를 도입하자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반대로 상당 부분 무산되고 말았다. 금융·경제위기가 빈발하고 그 전염성이 강한 현실을 고려할 때 케인스 구상이 실현됐으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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