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수 미래동아시아연구소 이사장
글로벌 권력은 순환한다. 한 세기 전 영국은 세계 권력을 조용히 미국에 넘겼다. 그 대가로 영국은 실제 역량보다 과분한 대접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영국의 이런 선례를 따를 이유가 없다. 여전히 막강한 미국의 국력은 과거 영국과는 다르다. 그러나 경제력 면에서는 중국에 쫓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국은 우리 시장에서 에프티에이로 경쟁하면서도 북핵 문제에는 협력 중이다. 최근 오바마와 시진핑이 연이어 한국을 찾기도 했다. 한반도에서도 양국의 변화 에너지가 분출 중인 것이다.
일찍이 독수리 같은 안목으로 중국의 변화를 감지한 헨리 키신저는 ‘중국의 발전은 운명’이라며 중국이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제국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옛날 실크로드도 군인이 아닌 상인의 길이었다.
핵심은 경제에 있다. 지난해 중국 경제는 주목할 만한 이정표를 세웠다. 서비스업 생산이 처음으로 제조업 생산을 능가하면서 7%대의 ‘낮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전보다 더 많이 창출했다. 경제 전략의 핵심도 성장이 아닌 일자리로 바뀌었다. 2013년 국내총생산(GDP)은 11조달러로 미국의 15조달러를 뒤쫓고 있다(실질구매력 기준). 외부에서는 7%대로 낮아진 성장률을 우려하지만, 이미 중국 내부에서는 향후 5~6% 시대를 준비 중이다.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도 여느 때처럼 기탄없이 터놓고 진행되었다. 그들은 모든 문제를 치열한 대화로 풀어간다. 갈등은 세기적 협력 과정에서 불거지는 앙칼진 곁가지들에 불과하다. 미·중 양국에서 화려한 경력을 지닌 케네스 리버솔 교수는 양국 관계를 ‘솔직하고, 긍정적이고, 포괄적이며, 협력적인 파트너 관계’라고 말한다. 이것이 불안정한 양국 관계를 잇는 파트너십의 핵심이다.
양국은 현재 크게는 20개, 작게는 100개의 대화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연 2회 개최하는 전략경제대화도 실제는 연중 내내 가동된다. 군사교류도 활발하다. 지난해 군사교류는 공동군사훈련과 전함 방문, 지도층 상호방문을 포함하여 60회에 달했다고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니펑 부소장은 말한다.
하지만 양국 관계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차갑다. ‘중국이 언제 망할까? 언젠가는 양국이 한판 붙겠지!’ 이처럼 우리는 양국의 대립과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데 익숙한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거부감은 중국 봉쇄에 벽돌 구실을 같이 했던 동남아 국가들 및 일본과 그대로 닮았을 뿐 아니라, 중국 포위 전략의 배경으로 활용된다. 미국은 협력과 포위가 동시에 가능한 꽃놀이패를 흔들고 있다.
중국에 대한 거부감과 거대 시장 접근은 별개다. 지난해 우리의 중국 수출은 1800억달러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은 우리와 더 많은 협력을 기대한다. 북한과 멀어져가는 중국은 일본과도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한-중 밀착을 바라보는 미국의 눈길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 40여년 동안 동아시아의 가장 놀라운 변화는 미-중 관계의 발전이며, 그 틀 안에서 중국 부상도 진행되어왔다. 우리가 중국 거부감과 중국 시장, 그리고 미국의 눈길 사이에서 삼각 딜레마에 빠져드는 동안, 미·중 양국은 남북의 적대적 분단을 ‘현상 유지’라는 이름의 ‘밀약’으로 충실히 지키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쪽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백년제국이며, 또 한쪽은 천년제국의 폐허를 딛고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제국이다. 양국의 노회함과 거대함이 우리 앞에서 춤추고 있다.
한광수 미래동아시아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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