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연 기준으로 -2.9% 역성장을 했다. 예상치보다 저조한 ‘어닝 쇼크’이다. 상무부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댔다. 하나는 이례적인 한파이고, 다른 하나는 내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료 관련 지출의 감소다.
미국에선 올 들어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개혁안이 본격 시행됨에 따라 의료보험 가입자가 늘었다. 이 때문에 민간 연구기관들은 1분기 의료비 지출이 8~11%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실제로는 1.4% 감소한 것으로 나왔다.
미국은 의료산업이 발달한 나라다. 제약과 대형 병원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시장 규모도 가장 크다. 국내총생산에서 국민 의료비 지출 비중이 2012년 기준 16.2%로, 세계 1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9.3%)이나 우리나라(7.6%)에 견줘 압도적으로 높다. 그런데 영아사망률, 중증질환 치료율 같은 국민건강지표는 주요 선진국 가운데 최하위이다. 평균 기대수명은 81.1살로, 우리나라(84.6살)보다도 낮다.
의료산업의 발달은 의약품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더 많은 유효수요를 전제로 한다. 미국의 예를 보면 국민의 건강 악화와 과도한 의료비 부담이 의료산업 선진화의 원천이다. 오바마케어처럼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을 높이는 제도는, 역설적이게도 의료산업 발달과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정부가 지난달 11일 의료법인에 영리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은 22일로 예고 기간이 끝나 이제 곧 시행 단계에 들어간다. 국가법령정보센터 누리집을 보면, 입법예고 기간에 주로 반대 의견만 5만건 가까이 접수됐다. 대부분의 국민은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산업 육성의 ‘빛’보다 ‘그늘’을 더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정부는 밀어붙일 태세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