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람 작가
지난달 법무부는 국민참여재판의 영역과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을 뼈대로 하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자 서울중앙지법의 ‘1심 재판 개선위원회’에서는 법률 원안을 보존하고 오히려 국민참여재판을 지금보다 활성화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즉각 내놓았다. 국민참여재판이란 2008년부터 형사재판에 한해 시행된 배심원 재판 제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 사안에서 정부는 사법부의 재판권을 더욱 강화하길 바라고, 사법부는 스스로의 과대 권능을 시민 배심원들과 나눠갖길 바라는 형국이다. 겉으로 보면 권력을 서로서로 양보하려는 이타성의 충돌로까지 보이는 흥미로운 상황이다.
배심제도를 축소하려는 정부 법률 개정안의 이면에는 시민의 법률적 판단과 의사중립성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면 사법 권력이 배분됐을 때 재판 결과를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 대한 공포심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 굳이 교과서적인 삼권분립을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권력이 법률이 아닌 인간을 매개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헌법보다 훨씬 근본적인 자연의 원리에 속한다.
형사 재판뿐만 아니라 민사 재판에까지 배심제도를 광범하게 도입하고 있는 미국의 법률가들은 배심제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변호사이자 법철학자였던 모리스 코언은 “통제되지 않는 판사의 재량권은 현대인의 복잡화된 삶을 망쳐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법제도는 현대적 삶의 양식이 구축되는 속도보다 느리게 개선되고, 개별 판사의 지적 능력은 현실에 뒤처진 법제도 전체를 아우르기도 벅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 고등법원 재판관이었던 제롬 프랭크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사실의 발견에 있어 배심원이 판사보다 낫다”고까지 주장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이 배심제를 단순히 ‘보다 민주적인’ 사법제도가 아닌, ‘보다 정확한’ 사법제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법률가들이 국민주권의 실현 차원에서 배심제도에 의의를 두는 태도를 취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배심제도는 정말로 더 정확할까? 과연 사실의 발견에 있어 배심원이 판사보다 더 나을까? 서울중앙지법의 국민참여재판 방청 도중 목격했던 잊을 수 없는 광경을 소개하려 한다. 이 재판 사건에서 검사는 피고인을 강간 죄목으로 기소했는데, 사건 특성상 피해 여성은 공판에 불참했다. 피고인 쪽의 변론 요지는 이러했다. 늦은 밤 자신의 집에 놀러 온 피해자가 먼저 치마를 걷어올리고 다리 사이로 속옷을 보여주었으며, 그는 그 행동을 성관계의 의사표시로 이해했다는 것. 늦은 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찾아간 여자가 침대에 누워 다리를 벌리고 치마 아래 속옷을 보여주었다면, 그 행동을 성관계를 허용하는 암묵적 의사표시로 볼 수 있을까? 그것이 사건의 주요한 쟁점이 되었고,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서 열띤 법리 공방이 벌어졌다. 방청석에서 느끼기로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는 것 같았다. 재판 막바지에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다. 배심원은 아홉명이었다. 아주 똑똑했는지, 단지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아홉명의 배심원이 공유하여 확장시킨 기억력이 위대한 효과를 발휘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배심원 한명은 수많은 증거자료 가운데 사건 발생 당일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진술조서의 어떤 문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로 모든 것을 뒤집었다. 그는 물었다. “거기에는 피해자의 ‘바지’를 벗겼다고 쓰여 있던데요?”
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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