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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와 법치주의 / 현준원

등록 2014-07-23 18:22

현준원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준원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새로운 제도는 그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따라 도입 여부가 결정되고, 그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법이라는 틀에 담긴다. 즉 법이란 우리가 속한 공동체 구성원 간의 사회적 약속인 것이다.

우리는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에 기반해 온실가스 배출을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30%를 감축하기로 합의하고,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에 이러한 약속을 규정한 바 있다.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을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에 담았다.

그러나 최근 산업계로부터 배출허용총량이 너무 적어 산업계에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기 사용과 같이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하지 않는 간접배출까지 배출권거래제에 포함시키는 것은 불합리하며,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므로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연기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은 수많은 논의를 거쳐 이루어진 사회적 합의를 번복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미 이루어진 합의라고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기존 합의를 변경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는 점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특히 기후변화 문제는 산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이해관계자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한 기존 합의를 번복하고자 한다면 정부와 산업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동의도 구해야 한다. 만약 합의 번복에 대한 다수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기존 합의가 존중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배출허용총량은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준수하기 위하여 배출권거래제에 속하는 부문에서 배출할 수 있는 양을 산술적으로 계산한 결과에 불과하다. 간접배출을 배출권거래제에 포함시키는 문제도 이미 녹색성장기본법과 배출권거래제법을 통하여 정한 사회적 합의이다. 배출권거래제를 2015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것도 애초 2013년에 도입하려던 것을 산업계 부담을 우려한 사회적 합의에 따라 늦춰서 법에 규정한 것이다.

최근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8%를 차지하는 발전부문의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30% 감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그간 미국이 발표한 기후변화정책 중 가장 강한 수준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중국도 제13차 5개년 개발계획 기간인 2016년부터 2020년 사이에 전국 단위의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배출권거래제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유럽 27개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의 일부 지역 이외에도 멕시코, 브라질, 칠레, 카자흐스탄, 터키, 우크라이나, 대만, 베트남, 타이 등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사회의 이런 움직임을 고려한다면 국제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기존 사회적 합의를 번복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되는지 의문이다.

물론 배출허용총량 그 자체는 법으로 정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 제시된 안에 문제가 있다면 일부 조정할 여지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법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이고 법으로 정한 공동체의 약속은 무엇보다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 이를 변경하여야 한다면 이에 대한 구성원 다수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게 전제되지 않은 번복 주장은 공동체 유지를 위협하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현준원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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