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
얼마 전 이렇다 할 볼일도 없이 서점에 들렀다가 <비트겐슈타인 평전>을 구입했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알고 싶었던 건 아닌데 책이 근사해 보여서 충동적으로 사고 말았다. 원래 평전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연유로 밤마다 이 (지지대가 없으면 손목이 저릴 지경인) 두꺼운 책을 배에 턱 올려놓고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지적인 명료함이 윤리적 완전성으로 이어진다는 결벽에 가까운 철학적 신념”을 가진 이 천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몇몇 어려운 부분을 대충 넘기며 따라가는데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1948년 무렵 비트겐슈타인이 아일랜드에 머물 때의 일이다. 당시 그는 건강이 나빠져서 더블린의 관광 명소인 로즈에서 요양중이었다. 그곳 생활의 작은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제자 맬컴이 보내주는 미국의 대중잡지에 실린 추리소설을 읽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마을의 한 상점에 들렀다가 노버트 데이비스라는 작가가 쓴 추리소설 <두려운 접촉>(Rendezvous with Fear)을 발견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시절에 이미 읽고 주위에 권하기도 했던 이 소설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평가했다. “나는 수백권의 소설을 읽었고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마 두권일 것이다. 그중 하나가 데이비스의 책이다.”
다시 한번 읽기를 마친 후에 그는 맬컴에게 두 가지를 부탁한다. 하나는 데이비스의 책을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 달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소감을 편지로 써서 저자에게 전하고 싶으니 주소를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맬컴은 데이비스의 행적을 찾지 못했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노버트 데이비스는 해밋이 개척하고 챈들러가 가다듬은 하드보일드 탐정물을 쓰는 작가로 1930년대 초반에 변호사를 그만두고 <블랙 마스크>라는 펄프매거진(싸구려 대중잡지)을 통해 데뷔했다. 하지만 10여년의 경력이 무색하게도 생활고로 인해 1949년 세상을 떠나고 만다. 동료에게 돈을 빌리는 생활을 전전하다 끝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살아생전에 비트겐슈타인의 편지를 받았다면, 비트겐슈타인 같은 슈퍼스타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울 정도의 소설을 쓴 작가였음이 기록으로 남았다면 오늘날까지 문학사에 찬연히 빛났을지 모르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그건 그렇고 비트겐슈타인은 왜 노버트 데이비스의 소설을 높게 평가했는가. 그 이유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사서 읽어주기 바란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다. 문학에 대해 논할 때 추리소설에 좀처럼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의 경우는 그에 대한 선입견이 좀더 강하지 않나 싶다. 추리소설은 뭘 모르던 시절에나 읽는 (무익한) 책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인식이리라. 하지만 비트겐슈타인도, 헤밍웨이도, 카뮈도 추리소설을 읽고 영감을 얻었으며 굳이 그걸 숨기지 않았다. 모두가 추리소설을 읽을 이유는 없지만 추리소설 읽는 것을 무익 내지 해악으로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년 이맘때면 등장하는 “국내 서가를 또 일본 추리소설이 점령했다”는 식의 논평이나 기사가 슬슬 지겹기도 하고. 소개했다시피 철학과 문학의 대천재들도 추리소설을 읽고 영감을 받았다고 하니까, 일단은 추리적 영감이 확실히 필요해 보이는 정부의 고위급 관계자들부터 좀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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