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 대중문화평론가
<고독한 미식가>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다. 별다른 스토리가 없다. ‘고로’라는 인테리어 중개업자가 나온다. 혼자 다닌다. 밖에서 일하다가 배고프면 멈춘다. 뱃속에 음식을 넣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인데도, 아무 데나 들어가지 않고 맛있어 보이는 집을 찾아 헤맨다. 찾아 들어가 먹고 나올 때까지 독백이 이어진다. 뭘 먹지? 이 집이 맛있을까? 뭘 시키지? 저것도 맛있어 보이네. 와! 맛있다. 바다다. 초원이다. 좋지 아니한가. 실컷 먹고 흡족한 표정으로 식당을 나와 길을 걸어간다. 끝!
음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 <심야식당>엔, 스토리가 많다. 스트리퍼, 은퇴한 야쿠자 등 혼자 사는 이들이 심야식당으로 온다. 음식은 이 유사공동체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한 음식은 한 인물과 연결돼, 맛보다 사연이 중요한 ‘솔(soul) 푸드’가 된다. 반면 <…미식가>의 음식은 음식 그 자체다. 맛으로 존재할 뿐, 인물이나 사연을 대변하지 않는다. 고로의 일과 음식 사이에도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한번은 일본 악기 샤미센 가게에 들른다. ‘샤미센과 어떤 음식이 어울릴까’ 고민하다가 튀김집에 간다. 샤미센과 튀김? 고로의 기호가 독특하구나. 끝!
맛있는 음식을 주구장창 혼자만 먹는 것도 독특하다. 맛있는 건 여럿이 먹을 때 더 맛있고 맘도 편하지 않나. 맛있는 걸 누리는 호사스러움, 사치스러움에 대한 미안함도 줄어들 거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 ‘부모님 생각난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거다. 이 ‘미식가’는 다른 사람 생각 안 한다. 혼자 먹는 얼굴에 우수가 스미지 않는다. 탐욕스럽거나 미련해 보이지도 않는다. ‘혼자 먹는 내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면, 그건 인간 자체가 쓸쓸한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느긋한 실존. 음식이 강요하는 사회성을 이렇게 간단히 배반하다니.
맛있는 것 찾아 먹고, 맛에 흠뻑 젖고, 혼자서도 그런 일을 하는 게, 사치가 아닐 거다. 사회가, 역사가 그 정도는 됐을 거다. 나는 <심야식당>의 유사공동체보다 그런 말을 해주는 고로의 표정에서 더 위로를 받는다. 거기엔 판타지가 없다. 욕망과 감각에 대한 겸손한 인정이 있다. 아! 판타지가 돼버릴지도 모를 게 하나 있다. 음식의 맛!
고로는 사전 정보 없이 식당을 밖에서 보고 떠오른 직감에 의존해 맛집을 찾는다. 나도 그렇게 해봤다. 화려하든 소박하든, 외양이 던져주는 맛집의 힌트가 있다고 생각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맛집의 힌트가 풍기는 식당 세 곳을 가봤다. 건물 틈새의 만두집, 시장 골목의 순두부집, 목재 인테리어가 정갈한 국숫집. 맛이 없었다. 정성보다 요리에 대한 적성과 재능의 문제로 보였다. 우울했다. 맛없는 걸 먹어서가 아니라, 가수가 되려는 음치를 여러 명 잇따라 본 기분이었다.
한국에선 소득수준을 높이기 위한 기회추구형 창업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계 유지를 위한 생계형 창업의 비중이 40%에 이른다는 보도가 최근에 있었다. 선진국 평균의 2배란다. 그 상당수가 요식업이란다. 요식업이 과포화상태여서 더 이상 창업은 좋지 않다는 기사를 본 지 10년은 더 된 것 같다. 반면 창업 성공 사례로, 식당 주인을 인터뷰한 기사도 10년 넘게 나온다. 신규 창업의 절반이 3년 안에 폐업한다는 보도도 오래전에 나왔다. 되든 안 되든 식당은 계속 생겨날 거란 얘기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직이 시작됐다. 그렇지. 식당이 전쟁터인데, 미식가라면 우울해하지 말고 맛없는 음식도 먹을 줄 알아야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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