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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감시’를 요구하는 잊혀질 권리 / 박경신

등록 2014-08-07 18:43

(사)오픈넷 공익소송 이사·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사)오픈넷 공익소송 이사·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이적표현물을 퍼날랐다고 해도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인터넷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한 좋은 판결이다. 사실 ‘인터넷에 올리기’는 없다. 특정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특정 게시판에, 특정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지 이용자들이 모두 보게 되는 ‘인터넷’이란 곳은 없다. 자신의 블로그에 이적표현물 몇 개를 조용히 보관해놓은 것은 아무리 공개 블로그라 하더라도 법적 규제대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사적인 것이다. 인터넷은 광장이라기보다는 수억개의 작은 방들의 집합체다.

잊혀질 권리는 과거의 나를 타인이 잊어주기를 원하여 자신의 과거에 대한 정보가 명예훼손도 프라이버시 침해도 아니지만 지워달라는 주장이다. ‘한번 공개되었다고 할지라도 무시간적으로 영원히 공개되는 것은 가혹하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가 합법적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그 정보를 접한 것은 아니므로 더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을 막을 프라이버시권이 있다’고도 주장한다. 옳다. 위에서 말했듯이 인터넷 이용자들이 모두 볼 가능성이 있는 장소에 글을 올린다고 해서 모두가 그 글을 실제로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주장을 과거의 정보를 현재의 인터넷에 올렸다가 ‘잊혀질 권리’ 주장 때문에 삭제를 요구받는 사람 입장에 적용해보자. 그가 현재 시점에서 올린 정보도 모두가 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실제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거 일반에게 공개되었던 정보에 대해서도 프라이버시가 남아 있다고 하는 만큼이나 현재 그 정보를 올리는 것도 사적인 통신이 되며 잊혀질 권리 규제는 여기에 적용되어서는 아니된다. 사적인 통신까지 차단의 대상이 되는 것이야말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위의 국가보안법 피고의 행위가 너무 사적이라서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잊혀질 권리 주창자들은 이미 일반에게 공개된 정보를 취득하는 것도 감시라며 ‘만인에 의한 만인의 감시’를 종식시키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감시라면 타인이 어떤 정보를 올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감시다. 즉 잊혀질 권리는 누가 나의 과거사를 또 올리고 있는지 지속적인 웹서핑을 할 권리, 즉 동료들을 감시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비로소 집행될 수 있다.

이 모순은 구글스페인 판결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실 잊혀지길 원하는 정보 자체를 차단 삭제할 정도의 잊혀질 권리는 어디에서도 인정되지 않는다. 구글스페인 판결은 잊혀지기를 원하는 정보를 검색 결과에서 배제시킬 권리는 인정하였다. 한 번의 공개를 수용한 것이 영원한 공개의 수용이 아니듯이, 여기서 잊혀질 권리는 한 웹사이트에서의 게시를 수용한 것이 검색까지 수용한 것은 아님을 의미한다. 하지만 검색은 매우 사적인 통신이다. 특히 검색결과 페이지는 검색자에게만 보인다. 그런데 구글스페인 판결대로 특정 글이 인명 검색을 통해서 검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구글은 모든 사람들이 무슨 검색을 하고 있는지를 계속 ‘감시’해야 한다. 우리는 결국 구글을 통해 우리 서로를 감시하는 셈이다. 누가 타인의 과거사를 검색하는지 말이다. 제발 생각해보자. 자신의 과거사가 ‘사적’인 거라서 아무리 합법적이라도 타인들이 관련 정보를 서로 나눌 수 없도록 막고 싶다면 그러한 정보공유를 막으려는 것 또한 그 타인들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지. 일관성이 있는 사회라면 잊혀질 권리는 존재할 수 없다.

(사)오픈넷 공익소송 이사·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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