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칼럼니스트
낙수효과론이란 게 있었다. 부자들이 많이 벌어야 그 돈이 흘러 내려와 사회 전체로 분배되고 경제도 성장한다는 논리다. 우파 경제학자들의 신줏단지였던 이 가설은 이제 명실상부 도시전설이 됐다. 진지하게 주장하면 바보취급 당한단 소리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인용할 것도 없다. ‘같은 편’이라 할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조차 최신 보고서에서 “심한 불평등이 성장의 장애물”임을 인정하고 있다.
경제의 낙수효과는 고장임이 밝혀졌지만 다른 영역의 낙수효과는 여전히, 날이 갈수록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점도 높은 액체처럼 뭉글뭉글 흘러 내려와 낮은 곳을 남김없이 덮으며 쏟아진다. 사회를 온통 적시고 있는 그것은 자본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다. ‘증오’라 이름 붙은, 우리들에게 아주 친숙하고 불편한 정서.
증오의 사전적 의미는 ‘사무치게 강한 미움’이다. 하지만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소위 증오범죄의 맥락에서 보면 증오는 그렇게 단순한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증오범죄는 인종, 종교, 출신 지역, 성적 지향, 신체 장애 등에 대한 편견에 기반한 범죄다. 대체로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다. 그런데 가해자 역시 사회 전체에서 보면 약자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약자의 약자에 대한 공격’인 셈인데, 더 정확히 말하면 ‘약자가 강자의 시선으로 다른 약자를 내려다보며 가하는 폭력’이다. 이때의 증오가 ‘혐오’나 ‘경멸’ 같은 감정과 잘 구별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서울 종로에서 계속 발생하는 동성애자를 향한 ‘묻지마 폭력’은 전형적인 증오범죄였다. 또한 일간베스트저장소의 호남혐오 발언, 여성혐오 발언들은 ‘증오표현’의 일종이다. 증오표현은 아직 한국에서 별도의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서유럽 기준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 증오범죄로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
학교나 직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도 넓은 의미에서 증오범죄의 일종이다. 윤 일병 사건, 임 병장 사건 역시 군대 내의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요인을 지닌 증오범죄라고 봐야 한다. 이 끔찍한 비극을 추동했던 동기는 명백하게도 혐오, 증오, 모멸과 같은 감정들이었다. 물론 구조가 어떻든 가해자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군대라는 ‘폭력의 맷돌’에 끼인 약자들 사이에서 가장 잔인한 형태의 폭력이 이렇듯 빈번히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증오범죄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한국 상황에 맞는 제도적 대응책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인권 감수성을 북돋기 위한 사회적 지원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승자독식이 철저히 관철되는 한편 패자부활이 어지간해선 용납되지 않을 때, 낙오에 대한 공포는 팽팽히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다. 그 공포는 약자와 자신을 구분하려는 강한 욕망을 만들어낸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증오하기, 혐오하기다. 해서 증오범죄는 줄어들기 어렵다. 사회는 응집력을 잃고 허물어지다가 끝내 파국에 이를 것이다. 그건 지배 관계가 일거에 뒤집히는 혁명이 아니다. ‘설국열차의 꼬리칸’부터 떨어져 나가는, 즉 가장 약한 사람들부터 소멸하는 잔혹한 몰락이다. 증오의 낙수효과는 왜 이렇게 잘 작동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포괄적 대답은 놀랍게도 ‘경제의 낙수효과는 왜 작동하지 않는가?’의 그것과 일치한다. 답은 ‘극단적 불평등’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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