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1934년 7월24일, 삼남지방에 대수재가 났다. 사망 237명, 실종자·부상자 포함 676명의 인명 피해가 났다. 23만여명이 집 잃은 이재민이 되었다. 검색을 해보니 <동아일보>는 그해 말까지 총 195개의 삼남수재 관련 기사를 실었다. 대부분이 자사의 수재의연금 실적 보도였다. 참사의 진상과 원인 규명,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총독부의 피해집계 발표를 보도한 8월25일 기사 위에는 ‘7월의 백중달’이라는 제목으로 아름다운 사진 화보를 실었고, 그 옆에는 찬바람이 불자 관광객들이 조선으로 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산 사람은 사는 게 중요하다며 슬쩍 프레임을 비트는 것은 보수 언론의 아주 오랜 전통인가 보다. 물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동시에 물을 건 묻고 따질 건 따져야 한다. 그래야 참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피로론이 득세하고 있다. 시기가 교묘하다. 7·30 재보궐선거가 야당의 참패로 끝나고 박근혜 대통령 지지도도 심리적 저지선이던 40%가 무너지려다 반등하던 시기에 말이다.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국민들이 세월호 심판론을 앞세운 야당이 아니라 경제 살리기를 강조한 여당을 선택했다며 세월호 피로감을 설파하고 있다.
세월호 피로감이라는 말의 실체는 모호하기 그지없다.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세월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고 특별법 제정 등 진상 규명에 대한 요구도 강력하다. 8월1일 발표된 갤럽 조사에 따르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 53%가 찬성했고 반대 의견은 24%에 불과했다. 64%가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과 책임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국민 다수는 “아직 충분히 울지 못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세월호 피로감이 부각되는 걸 보면 어떤 정치적 효과를 의도한 게 아닌가 싶다.
세월호 피로감은 정치적 프레임이다. 프레임은 사실 여부를 넘어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이야기틀이다. 이로 인해 이익을 얻는 세력과 피해를 보는 세력이 생긴다. 이 프레임을 들여다보자. 경제가 어려운데 출구를 찾자, 특례입학이나 의사자 지정은 심한 것 아닌가(정작 유가족은 이런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는 ‘팩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야당이 세월호 이슈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등등. 이 프레임 속에서 세월호 이슈는 자연스럽게 민생을 불편하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
곧잘 간과되고 있지만 또 다른 정치적 효과를 따져볼 필요도 있다. 세월호 피로감을 의식하는 순간, 대화의 화제로 꺼내기 어려워진다. 서로 부담스러운 탓이다. 민주주의의 본령이 다수결이라는 형식적 승패가 아니라 소통을 통한 숙고와 성찰이라는 내용적 과정에 있다면, 피로감 프레임은 민주주의 자체를 질식시킨다.
그래도 피로한 건 사실이다. 왜 피로한 걸까? 경제가 안 좋아서가 아니라 정치권이 부정의하고 무능하기 때문에 속이 터지고 피로가 쌓이는 것이다. 야당의 무원칙 갈팡질팡, 정부 여당의 독선이 피로유발자인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평화와 화해는 충돌이나 갈등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다. 그리고 정의는 정치권이 유족들 앞에서 다 내려놓고 듣고 또 듣는 일에서 시작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피로’한 유족들 앞에서 어찌 ‘피로’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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