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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얼음물과 단식 / 김우재

등록 2014-08-25 18:55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알 수 없는 이유로 운동신경의 일부가 죽어나간다. 운동신경이 약해져 근육을 움직일 수 없다. 결국 음식도 못 먹고, 숨도 못 쉬게 되어 죽는다.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혹은 루게릭병의 증상들이다. 이 병은 인구 10만명당 2명꼴로 발생하고,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한국에는 약 1500명의 환우가 있고, 대부분의 경우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생물학자들에겐 연구하기 껄끄럽고, 의사들에겐 치료가 까다롭고, 제약회사들한텐 경제적 가치가 없다. 그나마 루 게릭이라는 유명한 야구선수, 스티븐 호킹이라는 천재 물리학자, 마오쩌둥 같은 정치지도자들이 이 병에 걸려, 다른 희귀성 질환들보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편이다. 최근에는 항체를 이용한 치료법을 비롯해 의생명과학의 최전선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중이다.

음식 섭취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기아(starvation)와 단식(fasting)은 다르다. 기아는 수동적이지만 단식은 능동적 행위다. 기아는 비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자연에는 단식에 적응한 종들도 있다. 곰의 동면은 가장 잘 알려진 단식의 예다. 수컷 펭귄은 알을 품는 150일 동안 물과 음식 없이 버틴다. 코끼리해표의 암컷은 30일, 우두머리 수컷은 90일 이상을 단식하며 육지에서 짝짓기를 한다. 1973년의 보고에 따르면 인간의 경우 382일의 단식 기록이 있다.

일반적으로 단식은 3단계로 나뉜다. 1단계 며칠은 간의 글리코겐이 혈당량을 맞추기 위해 완전히 소진된다. 2단계에선 지방이 산화되고 케톤체로 변한다. 뇌에 필요한 포도당이 소진되어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써야 하는데, 지방 자체는 혈류를 통해 뇌로 흘러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3단계에 접어들면 몸을 이루는 단백질의 절반이 소진되고, 혈류의 케톤과 지방까지 급격히 줄어들어 장기 대부분이 손상을 입는다. 여기까지 오면 회복 자체가 1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 3단계까지 가는 단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자연도 우리의 몸도 그런 위기에서 살아나는 법을 프로그램해 두지 않았다. 이 단계에서 개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다. 그래서일까. 이슬람의 라마단 단식은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고 영혼을 단련하는 성스러운 행사다. 단식은 생물학적 욕망의 절제이자, 인간만이 부러 실천할 수 있는 존엄한 행위인 셈이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을 널리 알리기 위한 사회운동으로 진화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간 유민 아빠 동조단식도 활발하다. 모두 중요한 일인데, 싸우는 방식이 참 다르다. 두 운동은 논리적으로 공존 가능하며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왠지 불편하다. 유민 아빠 때문에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비난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약자를 돕는 모든 운동은 중요하며, 각자에게 중요한 사건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의 정의란 논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공감의 정서가 없다면, 사회는 건강성을 유지할 수 없다. 그것이 반재벌 정서가 법으로 정착되는 이유이며, 세월호 사건을 다른 어떤 사건보다 먼저 기억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는 논리와 정서 사이에서 항상 고민해야 한다. 더해 지금 얼음물을 적극적으로 끼얹으려는 쪽이 세월호 사건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고자 하는 집권세력이라는 정치적 측면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두 사건의 공존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이다. 공감이 먼저다. 논리는 그 정서를 보듬은 후에 펼쳐도 늦지 않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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