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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공포와 무지 그리고 인종차별 / 이안지영

등록 2014-08-25 19:05수정 2014-08-26 09:29

이안지영 캐나다 칼턴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
이안지영 캐나다 칼턴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
페이스북에서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어느 식당에 영어로 적힌 안내문이었는데, 굳이 번역을 하자면 이렇다. “죄송하지만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아프리카 사람의 출입을 제한합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식당 앞에 버젓이 이런 인종차별 문구를 걸어둘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의 인종차별 문제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구조적 문제라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다.

사실 인종차별의 문제는 수백년에 걸친 식민 지배 역사와 함께 존재해왔고, 식민 해방의 역사는 인종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많은 국가들이 인종차별의 문제를 사회적 평등을 위한 투쟁이자 인권의 문제로 인식해왔다. 한국이 1978년에 비준한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 또한 그런 인식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인종차별 문제에 있어서 방관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오히려 일본의 식민 지배라는 집단적 상처 속에서 민족을 강조하며 스스로를 피해자로 위치시켜왔다. 여전히 식민의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이 150만명을 넘어서고, 해외에 이주해 살아가는 한국인도 700만명에 이르는 현실에서 우리는 이제 피해자 시각을 넘어 조금은 냉정하게 한국이 세계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아프리카인 출입 거부 문제는 한 식당 주인의 개인적 문제라기보다는 공포라는 일차적 감정이 어떻게 사회화되고 집단화되어 특정 집단을 배척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현대사회에 노출된 수많은 위험들 중 특정한 위험이 어떻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그것이 소수자에 대한 집단적 공포로 작동할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위험을 축소하자는 말이 아니라 특정 위험이 집단적 공포심으로 조장되고 그것이 특정한 대상에 대한 거부와 배척으로 연결되는 현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한 위의 안내문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이러한 공포가 특정 고정관념과 다른 세계에 대한 무지와 결합돼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도대체 “아프리카인의 출입을 제한합니다”는 문구에서 말하는 ‘아프리카인’은 누구인가? 실제 아프리카 대륙이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 문구에서 아프리카인은 피부색으로 인식되는 인종적 구분선이자 고정관념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난 궁금하다. 과연 이 식당은 백인계 아프리카인에게도 똑같은 출입제한 조처를 취했을지, 또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또는 유럽인들에게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지 말이다. 누군가는 식당 주인의 태도가 정말로 바이러스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론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주인이 정말로 에볼라 바이러스가 걱정되었다면, (최근 몇년간 고향에 간 적도 없었을지 모르는) 아프리카인의 출입금지가 아니라 최근 에볼라 출현 지역국을 방문했던 (한국인을 포함한) 사람 모두를 출입금지 시켜야 했을 것이다.

현재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프리카계 소년에 대한 퍼거슨시 경찰의 과잉 총격 살인 사건은 특정한 인종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오싹한 예이다.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의 문제는 먼 미국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한국 사회는 인종, 성,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사회적 차별을 금지하고 처벌할 수 있게 하는 차별금지법조차 제정하지 못한 상태다.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배척이 너무나 뼈아픈 하루다.

이안지영 캐나다 칼튼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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