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용덕 사회2부 기자
최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항소심에서 법원이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내란음모 사건 이후 30년 만의 내란음모의 부활이었으나 현재로서는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완패로 보인다.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유죄이고 검찰과 변호인단 모두 대법원에 즉각 상고했지만, 내란음모 사건에서 정작 있어야 할 내란음모는 빠진 탓이다.
보수진영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내보인다. 자유민주주의의 포기와 진배없다는 체제 걱정에 이 의원 등의 행위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니 대법원이 나서서 해결하라고 으름장이다. 국회를 향해서는 국가전복 획책이 맞는데 왜 이 의원을 제명하지 않느냐고 채근이다. 이참에 판사 자격심사를 강화해서 사법부를 개혁하자고도 한다. 축구 경기에 졌으니 심판을 바꾸자는 것인데, 보수진영의 속내를 보는 듯하다.
판결 다음날 신문들에는 큼지막하게 ‘내란선동 유죄’가 제목으로 뽑혔다.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러면 애초 이번 사건이 ‘이석기 내란선동 사건’이었나? 솔직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하다.
내란음모라는 영장을 디밀며 국정원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한 게 지난해 8월28일이었다. 꼭 1년 전이다. 내란음모 사건의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으나 사건 초부터 1심까지 6개월을 취재하고 항소심을 지켜본 지난 시간은 한국 사회의 민낯과 마주친 짧지 않은 여정이기도 했다.
수사 직후 쏟아진 공안당국발 오보들을 줄세우라면 이 지면을 꽉 채울 수도 있다. 국민들은 매번 놀랐지만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네요라며 정정했다는 소식은 지난 1년 사이 듣지 못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북한과 관계된 공안사건 연루자라는 사실이 국민에게 주는 공포의 무게는 크다. 사건 당사자는 진실과 상관없이 ‘종북’과 ‘빨갱이’란 낙인이 찍힌다. 재판 내내 ‘처단’이나 ‘북이 좋으면 북으로 가든지’라는 말을 보수진영이 입에 달고 지낸 것도 분단이란 특수한 상황이 있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이는 통합진보당이 대중정당으로 탈바꿈을 선언했으면서도 엄혹한 독재정권 시절 용인된 폐쇄적 운동권 논리를 벗지 못한 채 일부 인사들을 시대착오적 피해 망상으로 내몬 이유이기도 했다. 대선 개입이 밝혀지면서 개원 뒤 최대 곤경에 빠졌다는 국정원이 ‘최대 수혜자(?)’라는 논란 역시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찌 보면 지난 1년, 그래서 우리 사회는 사실과 진실의 추구, 합리적 토론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더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언론의 특종 경쟁을 교묘히 이용한 국가 수사기관의 국민적 두려움과 적대감 조성, 사실과 진실의 지난한 확인보다는 공안당국에 기댄 채 쏟아낸 언론의 거친 폭력은 우리 사회의 민낯 그대로였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론가인 존 스튜어트 밀이 ‘다수의 의견으로 소수를 말살하는 것은 강도질’이라고 했을 때 그 이유는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이었다. 불완전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진실이래야 사실 검증과 합리적 토론을 거쳐도 최고 수준의 이성적 합리성 정도이며 이 토대에서 자유로운 사회의 진보도 가능하다 했다.
사실이 외면되고 다수의 횡포는 묵인되고 영혼을 손쉽게 ‘진영논리’에 파는 대신 적대감으로 가득 찬 목소리들만 이 세상에 넘쳐난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 시대 자유민주주의를 노래할 수 있을까. 덧붙여 지난해 ‘내란음모가 맞나요’라는 글을 이 지면에 실었다. ‘그것도 모르면 기자를 그만두라’는 독자의 핀잔도 받았다. 하지만 이 말은 꼭 드리고 싶다. 거짓을 의심하고 진실로 나아갈 뿐이라고.
홍용덕 사회2부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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