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서울의 무게중심이 동남권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고 지난 두 달 사이에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4조원 올랐는데 강남3구가 그 절반을 차지했다. 부동산 가치만이 아니라 물리적 구조물의 무게중심도 갈수록 편중되고 있다. 제2롯데월드가 들어서면서 속출하는 싱크홀은 무게중심이 집중된 데 따른 문제를 상징해준다. 준비중인 초대형 사업 계획이 현실화되면 이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코엑스~잠실운동장 일대의 국제교류복합지구(72만㎡) 조성이 그러하다. 서울의 미래 먹거리 산업과 교통네트워크가 집중되면 이 일대는 서울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것이다.
복합지구 개발의 꽃은 한전 터다. 7만9342㎡에 이르는 터 중에서 1만5000㎡ 이상은 전시·컨벤션과 국제업무, 관광숙박시설로 채워지는 복합지구의 핵심으로 조성된다. 이를 위해 시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을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하고 용적률을 250%에서 800%로 높여 100층 이상을 허용할 참이다. 이로써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로 인식되면서 이를 선점하려는 자본의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전의 ‘최고가 경쟁입찰에 의한 매각’ 결정은 인수가격을 둘러싼 경쟁에 기름을 붓고 있다. 현재 업계에선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의 경쟁구도로 압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두 재벌이 한전 터에 쏟는 관심은 각별하다. 2006년부터 뚝섬에 약 2조원을 투자해 110층 높이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지으려는 꿈을 좌절당한 현대자동차는 한전 터를 매입해 ‘아우토슈타트’를 만들 궁리를 하고 있다. 강남 일대 재벌 소유 땅의 절반을 차지하는 삼성은 지명과 역명이 회사명과 같은 이곳을 삼성왕국의 명실상부한 본산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누가 되든 최종 승자는 최대의 값으로 획득한 이 땅을 자본의 욕망이 최대한 실현되는 곳으로 구축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바로 정책당국이 꿈꾸는 ‘공공 목적의 개발’과 근본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지점이 된다.
시는 지구단위계획과 같은 틀을 씌운 뒤 사전협상 방식으로 개별사업자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욕망이 극대화된 곳인 만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별사업들은 공익성과 적잖은 마찰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건축물의 용도와 높이, 주변 땅과의 연계 개발, 기부채납의 규모와 방식 등을 둘러싼 충돌이 대표적인 예다. 시는 한전 터를 전시·컨벤션과 국제업무, 관광숙박시설로 채우고 싶어하지만, 인수기업은 기업의 상징성이나 수익성이 큰 용도의 시설(기업 본사, 대규모 복합유통시설 따위)을 설치하려 할 것이다. 시는 ‘국제교류복합지구’란 큰 밑그림을 가지고 통합적 개발을 하려고 하지만, 개별사업자들은 인접 땅과의 연계·통합 개발에 난색을 표할지 모른다. 사전협상을 통해 정할 기부채납 30~40%를 실제 어떤 규모와 방식으로 상호 합의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사업 규모가 크고 복잡한 만큼 공익성과 사익성의 충돌은 다양하고 오래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땅을 팔고 빠지는 먹튀, 개발이익의 사유화, 과잉개발·단독개발·교통체증 등의 막개발이 빈발할 수 있다. 이해관계 조정이 늦어지고 시장침체가 장기화하면 용산개발 짝이 날 수 있다. 설혹 개별 땅의 개발이 신속하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복합지구 전체는 ‘자본 지배의 공간’ 혹은 ‘있는 자의 공간’으로 최종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 전례 없는 초대형 사업인 만큼 중장기적인 밑그림과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담보하는 계획적인 관리 틀이 처음부터 제대로 강구돼야 ‘전쟁’의 후유증이 최소화될 수 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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