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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시늉’뿐인 박근혜식 남북대화 / 김보근

등록 2014-08-31 18:51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9월에 열리는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 북한 응원단이 오지 않게 된 상황을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흡족해하며 미소 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논란 끝에 미녀응원단이 불참한 게 ‘남한 정치’ 차원에서는 박 대통령에게 가장 큰 이득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어쨌든 관련 주제로 ‘협의’를 한 상황이니, 이명박 대통령 때와 같은 ‘대화 단절’이라는 비판은 피해갈 수 있다. 또 김대중 대통령 때와는 달리 직접 응원단이 오는 것도 아니니, 극우·보수진영의 반발도 없다. 박 대통령은 이번 응원단 문제에서 남한 여론으로부터 ‘대북정책 지지율’을 높게 끌어올릴 수 있는 지점에 딱 자리잡았다.

취임 이후를 뒤돌아봐도 박 대통령은 큰 성과는 없는데도 ‘장사’는 잘했다. ‘딱 그 자리’를 잘 찾아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에는 박 대통령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고, 개혁진영에는 ‘그래도 그래도…’ 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게 ‘딱 그 자리’의 특징이다.

비법이 무얼까. ‘북한과 실질적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시늉만 내는 것’이다. 그래야만 극우·보수와 개혁·진보의 기대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있다. 그 실체는 한마디로 ‘이명박’인데, 화장을 통해 달리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박 대통령은 끊임없이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다. 물론 대부분의 제안은 알맹이가 없다. 북한만 신뢰를 쌓아야 하는 것처럼 강변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흡수통일론 아니냐는 의혹만 키우는 ‘통일대박론’, 아무 영양가 없는 내용만 늘어놓아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킨 ‘드레스덴 선언’…. 이렇게 실행되는 것은 없으면서 제안만 쏟아지니 이번 8·15 때 박 대통령이 어떤 대북 제안을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문 지경이다. 그런데도 새로운 제안을 내놓으면 언론은 받아쓰고, 공무원과 국책 연구기관은 국제심포지엄 등으로 포장해 내놓는다. 이런 기제들이 작동해 국민들에게 뭔가 대화 노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또 남북대화도 곧잘 제의하고, 대화의 현장에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역시 대화가 아니다. 우리가 세워놓은 원칙은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북한한테만 양보하라고 한다. 이는 대화가 아니라 굴복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남북이 만나는 장면 등을 언론 보도로 접하니,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시늉은 시늉일 뿐이다. 계속 알맹이 없는 제안이 되풀이되고, 결과 없는 협상이 이어지면 국민들도 점차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북한조차도 올해 초 고위급 회담 때 “박 대통령이 신뢰를 중시한다고 하니 한번 믿어보겠다”고 했지만, 이제 그것이 시늉이라는 것을 전제로 대화 전략을 짜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결국 처음에는 시늉을 통해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최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시늉이 무서운 것은, 우리 민족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중국과 미국의 자장이 세지면서, 한반도에서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시기에는 ‘진정한 대화’를 위한 1분1초가 아쉬운 상황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시늉만 하며 이 중요한 시절을 허송세월하고 있다.

참 큰일이다.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에도 ‘남북대화의 시늉’에만 그친다면, ‘박근혜의 5년’은 ‘이명박의 5년’보다 우리 민족에 더 큰 재앙이 될지도 모르겠다 .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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